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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 이야기, 누군가의 시작을 위하여

스무 해의 도서관, 그리고 하루의 강의

by 윤슬

요즘 같이 이직이 잦은 시대에, 하나의 직업으로 몇 십 년을 산다는 게 현명한 일인지 바보스러운 선택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도 '이것만 한 직업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한우물을 판 지 어언 이십 년째. 우연한 기회로 문헌정보학 학부생에게 특강 할 기회가 생겼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기회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회를 잡은 이유는 안정적인 자리를 원해 사전 정보 없이 공직에 발을 들이게 된 이십 대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왕 '사서직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보다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게 정보의 한 조각이라도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강 날짜를 정해지기 몇 달 전부터, 우선 내가 속해 있는 기관에 특강을 나가도 되는지 구두로 사전허락을 구했고, 승인 후 바로 외부강의 신고를 마쳤다.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겸직이 금지되어 있지만, 외부강의는 기관장의 사전 허락과 함께,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하다. (강의 당일은 출장이 아닌 연가로 처리하였다. ) 그리고 시간이 나는 틈틈이 학생들에게 '공공도서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강의안을 짜기 시작했다. 이론이나 기본적인 내용은 학교에서도 배울 테니, 나는 실무 중심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요즘 공공도서관의 트렌드, 현장에서 사서가 실제로 하는 일, 그리고 자기 계발까지 담아보았다.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생동감 있는 자료가 좋을 거 가다는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유튜브에서 각종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현직 사서의 브이로그나 도서관 홍보 영상이 제법 있어 마음이 든든해졌다. 발표 자료도 오랜만에 만들어보니 감이 잘 안 잡혔지만, ‘캔바’를 활용해 깔끔하게 구성했다. 시대에 따라 발표 도구도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었고, 나만 가만히 있었을 뿐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드디어 강의 당일날.

아침을 먹고 간단히 집안일을 마친 뒤 학교로 출발했다.

강의시간이 13~15시라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할 거 같아, 가방 안에 떡 두 개를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나이가 들수록 배고픔 같은 기본적인 신체 욕구에 대한 걱정이 많아진다. )

전철역에서 내려 학교까지 도보 15분.

'아...... 왜 우리나라 학교들은 죄다 언덕 위에 있는 걸까?'

내가 다녔던 대학도 언덕으로 유명했는데, 이 학교도 만만치 않다.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본인 모교는 언덕 위에 있다는데...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말이 실감 났다.

무사히 강의실까지 도착한 나는 학과사무실에서 조교님과 교수님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드디어 강의를 시작하였다. 수강생이 학부생이고 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강의 시작과 함께 쿵쾅거리는 심장은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떨림을 설렘으로 바꿔나가며, '다른 건 몰라도 수업 시간만은 칼같이 지키겠다"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며 수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학생들이 집중해서 들어준 덕분에 강의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졸음이 몰려올 법한 오후 시간에, 지루할 수도 있는 수업에 집중해 준 학생들이 참 고마웠다. 강의 직전 교수님께서 “수강생 중에 만학도도 있어요”라고 알려주셨는데, 실제로 60대, 70대로 보이는 학생 두 분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 강의였을 텐데도, 두 분 모두 수업 태도와 참여도가 매우 훌륭했다. 열심히 듣는 학생들과 함께 계신 만학도 분들을 보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강의 전후로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몇 시간씩 서서 강의하는 교수라는 직업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직업인으로서 이런 기회를 통해 특강을 하게 된 것이 참 뿌듯했다. 강의가 끝나고도 여운이 남아 나도 모르게 대학원 과정을 검색하는 내 모습을 보며, 배움의 여정은 정말 끝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강의당일날

사서로서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고, 시간을 쪼개가며 글을 쓸 때마다 ‘이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사실 내 브런치는 구독자나 ‘라이킷’ 수가 많은 인기 매거진은 아니다.)

그랬던 내 브런치 ‘20년 차 사서가 말하는 도서관’ 매거진을, 이번 강의에서 요모조모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브런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을 정리하고 보관해 주는 공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역시나 기록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임을, 그리고 일상을 기록하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한동안 ‘더 이상 쓸 게 없는데…’ 고민하던 매거진에 다시 단비 같은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고, 앞으로의 일상에서도 새로운 글감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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