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가 싫다
드라마를 본 적도 없다 .....
세간에서 떠들 듯, 그저 아라가키 유이랑 호시노 겐이 만난 드라마라며 옅은 이해를 어딘가 띄워두고 있을 뿐이다.
2021년 당시 도쿄 우에노역 시노바즈개찰 바로 앞 킷사(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망해버렸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서빙도 키친도 가능한 베테랑 자연 Y2K스타일 언니(수식어가 많다면 많지만 '진짜'를 표현하고 싶었다)가 호시노겐 로스 ..... (LOST의ロス)라고 씁쓸한 듯 내뱉은 한마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라가키 유이 로스겠지 라는 내 의문이라는 감상을 한 방울 첨가하니까 그 뒷맛(後味)이 언제까지고 혀 뒤편에 남아 텁텁함 속에 나를 가두는 게다.
학교 가기가 싫다
가끔은 발표하기가 무섭다
T식 인간임을 자처하며 아니 나는 정말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고기가 아니라 강철의 연금을 두른 로봇이 아닐까 중얼거리는 것, 누군가에게 너는 정말 사이코패스라고 호소당한 일들도 여기선 죄다 무용(無用)이다.
『虎狩』(호랑이 사냥)에서 비롯된 비극의 정서가 나에게 옮겨 붙어서가 아닐까. 아카지마 아츠시가 밉다. 조대환에게 나쁘지 말아라 !우리 민족의 비극은 약자인 스스로들이 나카지마 아츠시와 조대환 이 가진 양쪽의 권력성에 저항해야 한다는 불모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뜨거운 설움(설움은 분명히 차가울 테인데 감정이란 열이 한껏 몰리니 항시적 열사병에 시달린다)을 저마다의 필기구에서 소음에 가까운 음악을 자아내는 소리, 내가 아닌 누군가를 질책하는 수많은 눈동자 앞에 그러니까 일본인 앞에 피로(披露)해야 한다는 피로(疲労)감.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안 된다.
스트레인저로서 레지스탕스가 되어서 저항해야 한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던데 도망치기만 하니까 호랑이 사냥의 호랑이가 되어버린다. 호랑이로 전락하는 게 주체성이라고 믿는 종속들에게 목에 팻말을 걸어야 한다.
저항의 주체는 저항자에게 있다.
이 잔혹한 세계에서는 총을 두르는 것.
총을 사용하지 못하면 자연히 도태되는 것이다. 후퇴하는 것이다.
총, 균, 쇠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