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타 Nov 15. 2022

칵테일을 남긴다

저번 글인 <고양이의 위로>에서 내가 왜 고양이를 좋아했는지 생각해 보고 나니 내가 좋아했던 다른 것들도 왜 좋아했을지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면서 계속 퍼져나가는 건 불면증에는 좋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려 하니 쉽지만은 않았다. 저번에는 마침 위로에 대한 생각과 책들을 읽어서 트리거가 되었는데, 멍석을 깔아주면 역시 못 하나보다. 그래서 이런저런 거 다양하게 생각해 보기보단 내가 제일 좋아하고, 내 아이덴티티라 생각하는 취미인 창작 칵테일 하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칵테일이란 취미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선배의 추천을 받아 칵테일 동아리를 들어가게 됐는데, 단순히 마시고 즐기기만 하는 동아리가 아니라 실제로 칵테일을 만드는 법에 대해 배우는 동아리였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종류는 웬만하면 다 좋아했던 나는 그대로 칵테일에 빠져들었다. 전공 관련도, 운전면허도, 심지어 어릴 때 많이들 따는 컴활 같은 자격증도 없는 내가 그렇게 인생 첫 자격증으로 조주기능사를 취득할 정도면 정말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술은 정말 넓은 분야를 커버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들은 마치 학부에서 대학원을 고르는 것처럼 하나의 분야에 빠져 점점 몰두하게 된다. 맥주에 빠진 사람도 있고 와인에 빠진 사람도 있고 위스키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그중 내가 꽂힌 것은 순수 칵테일, 그중에서도 창작 칵테일이었다.


처음 칵테일 활동을 할 땐 바에 가서 여러 메뉴를 마셔보고, 인터넷이나 여러 소스에서 얻은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 보는 거였다. 하지만 점점 다양한 칵테일을 맛볼수록 뭔가 조금씩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 느낌을 설명하면서 주문하기엔 사람의 언어는 해상도가 너무 낮았다. 그래서 내 입맛에 완벽한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창작 칵테일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처럼 처음 시작은 나를 위해서였다. 그러다 어떤 선배가 내 창작 칵테일에 대해 "이건 진짜 바에서 마시는 것보다 맛있네"라고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개발한 메뉴가 장터에서 판매되었는데, 내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처음으로 내가 만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경험이었다.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자퇴하고 바텐더를 할까 고민도 했다. 강남의 바텐더분께 "취미는 취미일 때 즐거운 법입니다."라는 조언을 듣고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만큼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남들이 만들라는 대로 만든 적이 거의 없었다. 레고도 설명서를 절대로 보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원래 만들어야 되는 것은 안 만들고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곤 했다. 새로운 레고 박스는 더 다양한 재료의 충전일 뿐이었다. 어머니께 뜨개질을 배울 때도 기본적인 뜨는 법을 익힌 다음 바로 도안을 짜는 방법을 공부해서 직접 패턴을 설계하곤 했다. 향수도 마찬가지로 몇 년째  공방에서 직접 만들어 쓰는 중이다.


그동안은 그냥 타고난 성향이라 생각만 했는데, 이번 기회에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창작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을 때의 감동까지 생각해 보니 이를 통해 나를 계속 생산해서 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인 <드래곤 라자>의 가장 중요한 문장은 "나는 단수가 아니다."이다. 간단히만 이야기하자면 나라는 존재에는 부모님의 아들로서의 나도 있고, 회사원으로서의 나도 있고, 작가로서의 나도 있다. 즉, 내가 개발한 칵테일, 뜨개질, 향수 안에도 모두 나라는 자아가 들어있는 것이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


이건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대사이다. 흔히 만화라 하면 단순 유희 거리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저 대사로 교수님께 대답해서 A+을 받았다는 썰도 나올 정도로 굉장히 철학적이다. 이 대사에 나는 단수가 아니라는 말도 같이 생각해보자. 물론 내 신체는 언젠간 생물학적 정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나는 잊혀져도 내가 개발한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안의 나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나는 칵테일을 남긴다.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의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