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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17. 2022

0개 국어 가능자

나는 비 오는 날을 정말 싫어한다. 정확히는 비 오는 날에 외출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 한쪽 팔과 신경을 우산을 쓰는 것에 강제로 할당해야 하는 상황도 싫지만, 특히나 비가 많이 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게 되는 날에는 불가항력적으로 당하는 느낌이라 정말 싫다. 이제는 회사를 다녀서 불가능하지만, 대학교 때는 비가 온다는 이유로 자체 공강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온 직후, 그것도 새벽에 그쳤을 때 아침에 걷는 것은 꽤 좋다. 출근하는 길에 작은 공원을 하나 지나는데, 비가 온 다음날 여길 거닐면서 맡는 흙 내음이 정말 일품이다. 잎들이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리는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새싹이 흙 속에서 고개를 들면서 그 안의 생명까지 한꺼번에 흙 밖으로 뿜어내는 것 같은 싱그럽고 자글자글한 향이 난다.


오늘도 쓰면서 느꼈지만 내가 느낀 감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물론 사람의 인지보다 언어의 해상도가 낮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묘사를 보면 만족스럽기 쉽지 않다. 마치 영어를 하는 느낌이다. 머릿속에 있는 표현을 하려면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도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어떻게든 만들어진 문장이 내 의도대로 해석될지도 걱정이 된다. 마치 0개 국어 가능자가 된 느낌이다.


그동안은 인문학이나 사회학적인 책들을 보는 것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물론 당연히 많은 도움이 된다. 기본적으로 내가 갇혀있던 생각의 틀을 깨주는 내용들이 많았기에 덕분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여기서 나온 생각의 조각들이 글 속에 녹아들어 가는 재료가 된다. 이에 비해 소설을 볼 땐 정말 흥미나 유희의 느낌으로 가볍게 큰 생각 없이 읽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저런 표현력을 기르는 데에는 소설류의 글들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소설을 볼 때도 좀 더 문장 문장 살펴보면서 좋은 문장이 있으면 수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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