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버킷리스트였던 번지점프에 도전했다. 아파트 21층의 높이. 생각보다 무서웠고 생각보다 할만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정말 그랬다. 평소 익스트림한 걸 좋아하는 편이라 무서워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막상 올라가니 오금에 자극이 오는 게 느껴졌고, 혹시나 발이 떨어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카운트다운을 하니 뛰어내리는 것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서 총평은 재밌었다. 내려오자마자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역시 이런 걸 좋아하나 보다. 번지점프를 처음 해보면서 제일 신기했던 건, 처음에 뛰어내려서 자유낙하 상태가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다리가 저절로 허우적거렸다는 것이다. 혹시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무런 저항이 없는 상태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주 미아가 되지 않는 한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번에 했던 번지점프처럼 자유낙하를 할 때 잠깐의 해방을 경험할 뿐이다. 그렇다고 중력이 우리를 억압하여 괴롭게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중력과 중력에 묶인 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고, 방향을 전환할 수 있고, 원할 때 멈출 수 있다. 중력이 없다면 우리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운 좋게 근처에 물체가 있어 그 물체를 밀어내면서 한번 나아갔다 해도, 다시 물체를 만나기 전까진 멈추거나 방향을 전환할 수 없다.
2년 전쯤에 을왕리에 간 적이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사람들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갈매기들이 새우깡 봉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 머리 위에서 정지비행을 하다가 새우깡을 들면 바로 내려와 먹는 놀라운 광경을 봤다. 헬리콥터처럼 프로펠러가 달린 것도 아니고 날개로 비행하는 갈매기가 어떻게 하늘에 멈춰 서있을 수 있는가 봤더니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마주 보고 날아 평형을 맞추고 있었다.
물리학에서 평형은 안정적인 평형과 불안정적인 평형으로 나눈다. 평형과 불안정이라는 단어가 공존할 수 있는가 궁금증이 들 수도 있지만, 어떤 물체가 모서리로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물체는 분명 완벽하게 무게 대칭이 균형을 이루며 평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에 불안정한 평형이라 한다. 이에 비해 오뚝이처럼 어느 정도 건드려도 조금 흔들리다가 다시 본연의 평형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안정적인 평형이라 한다.
두 평형은 물체가 받은 힘을 중력이 도와주는지, 혹은 저항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불안정한 평형의 경우 조금만 중심이 달라지면 중력에 의해 바로 가속되면서 순식간에 무너져내린다. 그러나 오뚝이 같은 물체의 경우 균형이 옮겨졌을 때 중력이 반대 방향으로 저항하면서 다시 바로 세워준다. 갈매기 또한 맞바람을 맞고 있었기 때문에 뒤로 밀리면 앞으로 날고, 앞으로 가면 뒤로 밀리면서 제자리에 서있을 수 있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저항하는 힘이 더욱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개발자들은 저항이 주는 안정성을 가장 잘 아는 존재일 것이다. 개발자들 사이에선 코드가 한 번에 잘 작동하면 오히려 불안하다는 밈이 있다. 몇 번 버그가 나야 내 코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수정 보완을 거쳐야 드디어 내 코드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돛으로 항해하는 기법 중에 태킹(tacking)이란 게 있다. 이는 놀랍게도 돛만 사용해서 바람의 저항을 거슬러 나아가는 기법이다. 정확히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45도 대각선을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방법이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바람 이용하여 바람의 저항을 뚫고 갈 수 있다. 그래서 돛으로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역풍은 무서운 대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오히려 아무런 바람이 불지 않는 상황이 더 무서웠을 것이다.
최근 도전했던 일들에서 크고 작은 실패들을 연달아 겪었다. 자기 회복력이 높은 편이라 하루 정도 침수 후 금방 나아지긴 했지만, 미신을 믿지 않는 내가 요즘 액이 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에 계속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하게 되는 건, 이전 실패에서 배운 것으로 방향을 수정한 다음, 또 일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야 순풍이던 역풍이던 바람이 불 게 되고,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언제나 어려운 마무리는 <드래곤 라자>로.
밤하늘은 어둡고, 주위는 차가운 암흑뿐이지만,
별은 바라보는 자에겐 반드시 빛을 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