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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21. 2022

잘 팔리는 책, 잘 안 읽는 책

전에 갔었던 독서모임에서 재밌는 방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 장르와 잘 안 읽는 책 장르를 소개하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인문, 사회, 심리 쪽이다.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이과 쪽으로 노선을 틀어서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책을 접하면 내가 보지 못했던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 재밌다. 그리고 내가 잘 안 읽는 장르는 자기 계발서이다. 자기 계발서는 베스트셀러를 보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정말 많이 팔리고 읽히는 장르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말이니 신빙성도 있을 것 같고 내용도 보면 정말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말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자기 계발서를 잘 안 읽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고 나면

날 때부터 새였던 것은 잊고

부지런함의 효과라 떠들겠지


부지런함의 효과를 떠받들면

날 때부터 벌레였던 것은 잊고

일찍 일어난 벌레는 새에게 잡히겠지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속담에 쪼잔한 거부감이 있다. 어느 날 저 속담에 대해 생각하다가 갑자기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으려면 일찍 일어난 벌레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럼 일찍 일어난 벌레는 무슨 죄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쓴 시다. 일찍 일어난 새가 성공하려면 일찍 일어난 벌레가 있어줘야 한다. 이를 좀 비관적으로 일반화하자면, 누군가 성공하려면 같은 방식을 택했던 자들에게서 상대 우위를 점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성공한 사람이 그 방식을 퍼트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방식을 택하게 되고,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인원도 늘어난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으로 자기도 성공했다고 얘기하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에서 짓밟힌 사람의 수는 그보다 배로 늘어날 것이다.


물론 위의 논리는 많이 과장되긴 했다. 나도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계발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계발서에도 많은 고찰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는 다른 책들을 볼 때에 비해, 더 의식해서 판단하고 거르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성공한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에 더 현혹되기 쉽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A를 하면 B가 된다'라는 가설을 검증하려면 네 가지 방향을 살펴봐야 한다.


A를 했는데 B가 된 경우

A를 안 했는데 B가 된 경우

A를 했는데 B가 안 된 경우

A를 안 했는데 B가 안 된 경우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에서는 'A를 했는데 B가 된 경우'에 대해서만 다루고, 나머지 세 경우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것이 정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럴싸한 설명인지도 잘 봐야 한다. 특히나 실패담을 다루는 책은 많지 않다. 실패를 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기 부끄러울 수 있는데, 책으로 내서 널리 알리는 용기를 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공부할 때 오답노트를 썼듯이, 성공 사례만큼 실패 사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저렇게 그럴싸하고 좋은 부분만 편집될 가능성이 있는 자기 계발서보다는 그래도 모든 사건을 다 적으려고 하는 역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정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도 나에게 잘 맞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위의 속담에서도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새에게는 어울리는 조언이었지만 벌레에게는 오히려 죽음을 재촉했다. 유명한 자기 계발서인 데일리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보다가 이것을 느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예시에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 대해 노력하면 되는데 바쁘다고 하는 것은 핑계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난 이런 문장이 정말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난 암기력이 정말 안 좋은 편이다. 암기력에 정말 좋은 지인이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기술이나 노력으로 잘 외우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보면 사진 찍히듯이 이미지가 머리에 들어와서 저장된다고 한다. 즉, 타고난 기질인 것이다. 나도 계속 시간을 들이고 다양한 암기 기술들을 연습하면 주변 사람들의 모든 이름을 외우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것에 쓰는 자원의 양과 암기력이 좋은 사람들이 쓰는 자원의 양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원을 잘 못하는 암기력보다는 나에게 더 잘 맞는 다른 방법에 사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허준이 교수님은 성공에 대해 '우연과 의지와 기질의 기막힌 정렬'이란 표현을 사용하셨다. 즉, 성공하려면 의지(노력)가 있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우연과 더불어 어느 정도 타고난 기질도 받쳐주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에서는 우연과 기질에 대한 부분은 잊고 의지에 대해서만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성공의 비결이 우연이나 기질에 의한 것이라 하면 당연히 책이 잘 팔릴 리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의지에만 집중되게 하면 자칫 공정한 세상의 가설에 빠져 비효율적인 곳에 자원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자기 계발서는 나에게도 잘 맞는 방법일지 잘 고민해 보면서 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게 좋으니 이렇게 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책 보단 "이런 내용도 있으니 나중에 필요하면 참고해봐"라는 느낌의 책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보단 좀 더 정보를 담백하게 풀어내는 인문, 사회, 심리 쪽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아이쇼핑을 했다. 최근에 <도파민네이션>을 읽어서 심리학 쪽에 또 재밌는 책이 있을까 둘러봤다. 하지만 요즘 인기 있는 책들을 모아둔 평대에 있는 책들을 보자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제목만 봐서는 비슷비슷하게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들 뿐이라 다양한 내용을 살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제목들이 다들 너무 카피라이팅 같았다. 이런 내용들이 잘 팔린다는 게 요즘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인가 싶어 씁쓸하면서도, 과연 이 책들은 잘 팔리는 게 목적일까 좋은 내용을 쓰는 게 목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용은 안 보고 제목만 훑어보고 든 생각이니 내가 틀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강요할 순 없지만, 잘 팔리는 게 목적인 책보단 진실되고 좋은 정보나 생각들이 공유되는 책들이 지향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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