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팀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들었어요.
OO님은 보면 항상 환하게 웃고 있어요
이 말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이라는 표현을 붙인 이유는 그동안 저는 제가 밝은 사람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근묵자흑'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은 주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최근에 밝고 명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밝아진 건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밝다는 표현과 저는 어색한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밝지 못하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이유는 표정이었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 단체사진을 찍으면 '치즈', '김치' 같은 말을 곁들이면서 다들 웃는 표정을 짓죠. 하지만 전 이렇게 갑자기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겨우 지어낸 표정은 제가 봐도 어색했고요. 특히 입모양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주변 근육이 부르르 떨리곤 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진 찍을 때 자연스럽게 웃는, 특히 하얀 이빨을 환하게 드러내며 웃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표정이 어렵다는 것은 계속 느꼈어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잃는 내향형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에너지가 다 떨어져 간다는 표시가 제일 먼저 오는 곳이 얼굴 근육이에요. 얼굴 근육이 가장 먼저 지치면서 표정을 지을 때 조금씩 경련이 와요. 그래서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게 되고, 그러고 있으면 친구들이 기가 다 빨렸다는 것을 알아채곤 했죠. 이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이 어렵다는 것에서 저는 밝고 화사하기보단 착 가라앉은 회색에 가깝다고 생각을 했어요.
좋아하는 작품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중학교 때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그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소설은 이상혁 작가의 <데로드 앤 데블랑>이에요. 제목부터 행운과 불행의 신을 의미하는 이 소설은 슬프고 불행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저는 이 책이 신나고 역동적인 판타지 소설보다도 더 마음에 남았어요. 웹툰도 <마음의 소리> 같은 개그물이나 <갓 오브 하이스쿨> 같은 액션물 혹은 <신의 탑> 같은 웅장한 모험 이야기도 좋았지만, <오렌지 마말레이드> 같이 슬픈 작품들이 더 마음에 와닿았어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아이유의 노래 중에서도 큰 인기를 가져다준 <좋은 날> 같은 노래보다 힘들었던 시절의 경험을 담은 자작곡인 <싫은 날> 같은 노래를 더 좋아해요.
한때는 중2병 혹은 사춘기의 영향으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휘몰아친 감정이 만들어낸 잠깐의 취향이었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의 최애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인 이유도, 다른 드라마처럼 유쾌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지만 마치 무거운 물결처럼 흐르는 서정적인 감정선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에요. 최근에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와 <난 내가 꼭 행복하지 않아도 돼>라는 비슷하면서도 반대되는 제목을 가진 두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역시나 더 제 마음에 와닿은 책은 <난 내가 꼭 행복하지 않아도 돼>였죠.
이런 취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서정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이런 서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저의 모습도 좋아해요. 다만 약간의 아쉬움은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다양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니 제 글 중에서 밝은 분위기의 글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깊게 했던 생각 조각들을 붙여서 글을 쓰는 편이다 보니 가볍게 통통 튀거나 몽글몽글한 내용보단 무겁고 진지한 내용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일기나 여행기 같은 글을 잘 못 쓰는 것 같아요. 무언가 깊은 생각거리가 포함되지 않은, 경험과 감정과 반응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글은 글자가 잘 나아가지 않더라고요. 묘사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 감정이 부족해서 그런 건진 잘 모르겠어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책인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은 시처럼 짧은 에세이들이 여러 편 들어있어요. 어떤 작품은 ~하다 처럼 반말로 쓰였고 어떤 작품은 ~해요 처럼 존댓말로 쓰여있어요. 최근에 읽은 책이 모두 반말 형식이기도 했고 저도 에세이를 쓸 땐 보통 독백하는 느낌으로 반말 형식을 쓰기 때문에 오랜만에 읽은 존댓말 작품이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살펴보니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내용엔 보통 ~해요 를 쓰시고 좀 더 단호한 내용엔 ~하다 를 많이 쓰시더라고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문체 또한 잘 사용해야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해요 형식으로 글을 써보면 평소에 쓰던 글보단 조금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 이번 글에 한번 적용해 봤어요. 역시나 아직은 어색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