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알고리즘 스터디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미리 문제를 나눠줘서 풀어보도록 하고 모이면 해결한 사람이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으로 했다. 다만 설명할 때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풀었는지 뿐만 아니라 문제를 읽고 나서 그 알고리즘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과정을 중점으로 설명하도록 했다. 그래야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중에 문제를 만났을 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쓴다. 여행기나 일기처럼 내 경험이나 감상만 쓰는 글은 성격상 잘 쓰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만 담는 글을 쓰진 않는다. 그 생각을 하게 된 과정이 없으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뜬구름 이야기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를 같이 써서 생각을 하게 된 과정도 같이 풀어내려 하는 편이다. 이번 글의 트리거는 아이유가 레고를 만들면서 Q&A를 하는 영상이었다.
나는 크게 두 가지의 방향성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중 첫 번째는 창작이다. 직업도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고, 취미도 칵테일이나 뜨개질이나 글쓰기 등 만드는 활동이 많다. 그리고 제작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이런 활동을 할 때 설명서나 레시피 대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내가 설계해서 하려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칵테일을 남긴다>에도 썼지만, 이렇게 내 생각과 철학이 담긴 것들을 세상에 남기면 그 안의 나는 영원히 살아간다는 마음인 것 같다. 즉, 창작 활동은 다른 의미에서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잘못된 신념을 가지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내 생각이 충분히 틀릴 수도 있음을 인지하며 다듬어나가려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결과에 대한 후회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제로썸 상대평가의 세상에선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과보단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는 것을 추구하기로 했다. 나를 돌아봤을 때 떳떳하고 뿌듯해서 나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좋아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 두 생각이 완전 별개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본 아이유의 영상에서 조용필 콘서트를 보고 든 생각이 내 마음을 울렸다.
옛날 노래들은 더더욱 가사가 시적인 게 많잖아요. 아름답고 시적이고 추상적이고 그런 노래들이 많아. 나도 내 가사 중에 아름다운 가사들이 많잖아.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가사라든지, 동화 같은 가사라든지. 그런 노래를 그때 가서도 부르려면 내가 잘 살아야 돼. 노래 가사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시적인데 그거를 부르는 사람이 설득력이 없는 사람이면 안 돼. 노래가 빛을 잃어. 그래서 가수가 진짜 관리도 관리지만 잘 살아야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딱 들더라.
내 창작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사라져도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내 창작의 결과들이 빛을 내며 살아있으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궁극적인 창작 활동일 수도 있다. 내가 나를 만들어 나가는 것. 내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나감으로써 내 창작 활동의 마지막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개의 길인 줄 알았지만, 어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창작 활동을 완성하기 위해 올바른 가치관을 이뤄나가는 것을 추구했던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