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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an 14. 2023

본다. 아니, 듣자.

지난달에 <예민함이라는 선물>이라는 책을 가지고 독서모임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예전에 봤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봤다. 앞의 책은 예민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고 뒤의 책은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읽어 보면 두 책에서 다루는 성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민할수록 자신에게 들어오는 정보가 많아지고 그 정보들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생각들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책 모두 정신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실제 물리적인 감각이 발달해서 감각 과민증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 재밌었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는 맨 처음 읽었을 때도 최근에 다시 읽었을 때도 격하게 '이건 내 얘기야!'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내게 오감이 발달했는지 물어보면 글쎄라고 대답할 것 같다. 청각은 돌발성 난청이 있어서 특히 왼쪽은 다른 사람의 절반 수준 밖에 못 듣는다. 미각과 후각은 칵테일을 취미로 가지고 있어서 관심은 있지만 민감하지는 않다. 좋아하지만 잘 하지는 못하는 그런 분야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에 격하게 공감했던 이유는 과민증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 감각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각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신체에서 유일하게 좋은 부위가 눈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실제로 다른 장기나 부위들은 심각하진 않아도 조금씩 불편한 점이 있다. 하지만 시력만큼은 정말 좋다. 예전보다 눈이 나빠졌음을 느꼈을 때 시력을 재도 2.0이 나왔던 것을 보면 아마 더 전에는 2.0을 넘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모든 호선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반대편에 앉아서 역 이름을 모두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시력이 좋으면 좋은 건 맞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피곤할 때가 종종 있다. 서 있어도 바닥의 먼지가 보이고 사람들 얼굴에서 모공이 보이고 모니터에서 픽셀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작은 정보 하나하나에서 끝없이 생각이 펼쳐나가면 걷잡을 수가 없다. 요즘은 시력이 1.2 ~ 1.5 정도로 떨어져서 예전만큼 보이진 않는다. 이 정도 시력이 딱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아이유의 <안경>을 들으면 다른 의미에서 가사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런 감각 과민증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특징이 또 하나 있다고 하는데, 바로 공감각이다. 특히 시각적 공감각은 이 책에서 소개한 다음 질문 하나로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화요일이라는 단어는 무슨 색깔일까요?


여기서 잠깐이라도 고민을 했거나 요일에 무슨 색이 있냐는 생각이 들면 당신은 시각 과민증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 질문을 보자마자 파란색이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 봐도 왜 파란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바로 파란색이 생각이 났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다른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칵테일이나 맥주를 시음하고 맛을 표현할 때, '처음에 위로 쳤다가 바로 떨어지고 평평한 구간을 지난 다음 마지막에 살짝 올라가'처럼 그래프로 표현하는 편이다. 이 말을 들은 친구가 맛을 참 이상하게 표현하는데 막상 듣고 마셔 보면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가서 신기하다고 했다. 후각을 표현할 때도 시각을 빌린다. 전에 향수를 만들 때 선생님께서 어떤 향을 원하냐고 여쭤보자 초록색 숲속에 살짝 봄바람이 불어 살랑살랑 흔들리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걸 보면 시각은 내겐 확실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감각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시각이 다른 감각에 비해 특히 유용한 감각일 수 있겠다고 느낀 경험을 했다. 나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작년에 갔던 전시회 중 카페쇼와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시각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커피에서 중요한 것은 맛과 향이다. 하지만 맛은 직접 혀에 닿아봐야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향은 멀리서도 느낄 순 있지만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나오는지를 알 수 없다. 특히 이런 전시회에서는 여러 곳의 향들이 섞여서 더더욱 멀리서 알기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따라서 직접 부스에 가서 시음하고 싶다고 부탁해서 받기 전까진 어떤 느낌일지 가늠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물론 커피에 대한 설명이 글로 쓰여있긴 했지만 사실 커피는 풍미의 차이가 너무 민감해서, 아직 커피 입문자인 나는 설명을 읽고 마셔봐도 그런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부스를 둘러보는 게 불편하다고 느꼈다.


이에 비해 일러스트는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각이다. 시각의 장점은 내게 온 정보가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내 고개가 향하는 방향 외의 정보는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전시회에서는 작가분들의 화풍을 짐작할 수 있는 대표작들을 부스 위쪽에 크게 걸어두는 편이다. 따라서 하나하나 찾아가서 말을 걸지 않아도 둘러보면서 내 취향인 부스와 아닌 부스들을 쉽게 선별할 수 있다. 덕분에 선택과 집중을 잘 해서 쾌적한 관람과 쇼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의 장점이 어떨 땐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넓은 의미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하곤 한다. 예를 들면 '아는 만큼 보인다', '개안을 했다'같은 표현이 있다. 영어에서도 꿰뚫는 통찰을 'insight'라고 하는데, 여기서 'sight'도 시력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시각의 문제점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의 정보만 들어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에코 챔버 효과라고 불리는, 자신과 생각이나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정보를 나누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에 대한 확신이 증폭되는 현상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시각의 문제점이 정확히 이런 현상을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경우에서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내게 들어오는 정보를 얼마나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에서 차이가 있다. 보는 것은 정보를 막기가 너무 쉽다. 단순히 고개만 돌려도 원래 있던 방향의 정보가 막히고, 아무것도 보기 싫으면 그냥 눈만 감아도 된다. 따라서 정보를 골라 먹기가 너무 쉬운 감각이다.


하지만 듣기는 다르다. 우선 소리는 모든 방향의 소리가 전부 들어온다. 그리고 눈을 감는 것처럼 쉽게 막을 수도 없다. 소음에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은 아무리 귀를 막고 귀마개를 해도 정말 시끄러운 소음은 다 뚫고 들어온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요즘은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이 나왔다. 하지만 노이즈 캔슬링은 눈을 감는 것과 달리 정보가 내게 오는 것을 막는 게 아니다.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는 3이라는 소리가 오면 -3이라는 소리를 뱉고, 7이라는 소리가 오면 -7이라는 소리를 뱉어서 내게 오는 영향을 0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노이즈 캔슬링을 하려면 오히려 내게 오는 정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반대파를 내서 상쇄시킬 수 있다. 즉, 듣기에서 어떤 정보를 막는다는 것은 그 정보를 정확히 이해해서 완벽한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을 보는 것보단 세상을 들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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