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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an 29. 2023

설에 내려가다 알게 된 독서와 글쓰기의 효과

설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가기 전날 밤, 자기 전에 내일 계획을 세워본다. 우선 고정된 일정으로는 서울 경부에서 3시 차를 타고 본가에 내려가야 한다. 사실 원래 일정으로는 성남에서 저녁차를 타는 거였다. 미리 예매하는 것을 깜빡해서 남은 차가 늦은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땐 서울 경부는 전부 매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보고 싶으셨는지, 지금 배차를 추가하고 있다고 하니 빈자리 생기나 계속 살펴보라 하셨다. 그렇게 살펴보다 빈자리가 나서 3시에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본가에 내려가기 전 해야 할 일은 세 가지이다. 본가에 가져갈 간단한 선물 사기, 점심 먹기, 친척에게 드릴 명절 선물 사기. 먼저 본가에 뭘 사 갈지 고민을 한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게 좋겠지? 마침 최근에 회사 앞에 맛있는 소금 빵 가게가 생겼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지도 앱에서 확인해 보니 내일 영업한다고 나온다. 빵 나오는 시간은 11시, 1시 반, 3시, 4시. 딱 좋다. 마침 가게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있으니, 1시 반에 맞춰서 가서 빵을 받으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다. 터미널에 신세계 백화점이 있으니 그 지하에서 명절 선물도 사면 될 것 같다. 이제 점심으로 뭘 먹을지만 고르면 된다. 고민하자마자 갑자기 평양냉면이 생각났다. 생각이 났으면 먹어야지. 마침 강남역에 제일 좋아하는 평양냉면집이 있는데 가는 길이니 들러서 먹으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시간도 동선도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잠자리에 든다.


휴일을 맞아 푹 잔 아침.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클로바 클락에 날씨를 물어본다. 클로바 클락은 어제와의 기온 차이도 알려줘서 좋다. 분명 어제가 그제보다 춥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 어제보다도 춥다고 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선 고민이 된다. 사실 지하철로 강남을 가려면 역까지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집 바로 앞에서 광역 버스를 타도 강남역은 갈 수 있다. 다만 그러면 가족에게 들고 가려 했던 소금 빵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 조금 추우면 어때. 소금 빵을 사기로 선택한다.


10분쯤 걸어가니 저 앞에 가게가 보인다.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든다. 빵 나오는 시간이 쓰여있는 간판이 왜 문 바로 앞에 있을까. 저기 있으면 분명 가게에 들어가는 데 불편할 텐데? 점점 다가가면서 보니 가게 안도 어두운 것 같고 문에 뭔가 종이가 붙어있다. 아. 설 연휴엔 문을 안 연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런 날에 쉬는 것까지 세세하게 정보를 제공을 안 했을 수도 있는데, 너무 앱만 믿은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버스를 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지하철을 타면 시간적으로는 더 단축되니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다독였다.


가끔 살다 보면 일이 마음대로 하나도 안 풀리는 싸늘한 느낌이 드는 하루가 있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날. 당연히 확률적으로 이런 날 없이 살 수는 없다는 것은 알면서도 오늘 하루는 왜 이럴까 하는 날.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오늘 내려가기 전에 계획한 것은 세개였다. 가족에게 줄 빵을 사고, 땡기는 점심을 먹고, 명절 선물을 사는 것. 그러나 시작부터 실패한 계획은 마치 날을 잡은 것처럼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원래 점심을 먹으려던 식당도 하필 문을 닫았을뿐더러 믿었던 신세계 백화점 지하도 운영을 안 할 줄은 몰랐다. 결과적으로 하나도 성공한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했던 것은 내가 생각보다 많이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심리학 책에 나올 것 같은 용어를 쓰면 자아 탄력성이 높아진 것 같다. 이렇게 하려고 했던 일이 모두 어그러지면 낙담하거나 화가 나거나 할 만도 한데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냥 다음에는 더 꼼꼼히 계획을 짜자는 반성만 하고 넘겼다. 그리고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내겐 독서와 글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새해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새해 목표로 삼았을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독서를 많이 하는 팁은 항상 책을 들고 다녀서 짬짬이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책을 가지고 다니면 이렇게 계획이 어그러져서 시간이 붕 떴을 때 '그럼 이 시간에 책을 읽으면 되겠군. 오히려 좋아'라는 생각으로 어그러진 계획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글쓰기에도 같은 원리로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빈 채로 버스터미널에 남겨졌는데, 덕분에 그 시간 동안 책을 푹 읽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을 쓰면 모든 빈 시간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외에 효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전에 좋은 글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해 유튜브 각을 생각하는 '유미새'라는 말처럼,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글감으로 만들어버리는 '글미새'가 되면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오히려 좋아하면서 넘길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가 좋은 글과 생각을 통해 나를 발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일처럼 외부 스트레스에 더 단단하게 반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정말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읽었던 괜찮은 글 중에 자신의 하루를 서술하면서 그날 든 생각을 담담하게 푼 글이 있었다. 그래서 마침 이번 설 연휴에 내려가는 날이 글로 쓸만한 하루였기 때문에 이런 형태로 한번 써봤다. 이렇게 경험을 길게 풀어쓰는 건 거의 안 해봐서 괜찮았을진 모르겠다. 그래도 에세이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소설도 써보고 싶으니 종종 이런 형태의 글도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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