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얀님의 <저는 갓생러는 당분간 안 하려고요>와 이 글에 링크된 <갓생살기 실패담>을 읽고 쓰게 된 글.
트렌드와 유행어에 관심이 없는 내가 갓생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친구에게였다. 몇 달 전 독서에 흥미를 가진 뒤로 빈 시간을 보내는 주 취미가 게임에서 독서와 글쓰기로 바뀌었는데, 여러 친구들이 이에 대해 '갓생산다'라고 표현을 해주었다. 나중에 따로 찾아봐서 갓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처음 든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내겐 모두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행위인데, 왜 하나는 갓생이고 나머지는 아닐까. 이전의 내 삶은 혐생인 것일까.
나는 방어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인 것 같다. ~이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내 생각을 단정 짓기 싫은 마음도 있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마음도 있다. 나의 말이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칫 낙인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려고 한다. 그래서 갓생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부정적인 단어는 아니더라도, 한쪽이 추앙되면 반대쪽이 낙인찍혀버리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느낌으로 갓생이라는 단어와 자주 같이 나오는 '미라클 모닝'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아침 = 부지런'이라는 공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훈련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하여도, 기본적으로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유전자에서 오는 선천적인 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비해 '미라클 나이트'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적절한 방법이 있을 텐데 '갓생', '미라클 모닝'과 같이 틀을 만들어버리면 그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겐 너무 잔인한 처사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갓생을 살진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려는 하루는 갓생에서 말하는 키워드인 아침, 계획적, 규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가령 글감이 없는데도 억지로 쓰긴 싫어서 정기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약속은 못 하겠다. 하지만 꾸준히 많은 생각을 하고 글로 정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처럼 너무 엄격한 계획을 일부러 세우지 않는 편이다. 너무 올곧으면 작은 균열에도 쉽게 부러질 수 있다. 오히려 내가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여유를 줘야 꺾이지 않고 효능감을 느끼면서 오래 지킬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대충 열심히 살려고 한다.
충분히 열심히 하는 일에 대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긴장하고 있는 마음을 한 번씩 풀어주는 게 필요하다. 나도 일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내가 나를 다그치고 있을 때, 대충 열심히 살면 된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너무 과하게 열심히 살다가 방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긴장감을 풀어도 괜찮은 방향으로 잘 흘러갈 것이다. 혹시 지금 긴장된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대충 열심히 살아요 우리."
'대충'이라는 말이 붙으면, 잠깐이라도 긴장감이 풀어지는 그 느낌이 나는 좋다.
- 정담이 x 김유은, <난 내가 꼭 행복하지 않아도 돼>
축구를 잘 하는 손흥민이 존경스럽다고 해서 나도 축구를 잘 하려고 한다거나 '나는 왜 축구를 못 할까'하는 생각에 자책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운동선수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갓생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물론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성공을 해나가는 사람들은 존경스럽고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내게 강요나 죄책감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성향과 삶의 환경에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갓생을 존경하면서도 나 또한 충분히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