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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Feb 26. 2023

말을 잘 못하겠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함께 다양한 서비스들이 점점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비대면 서비스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서 더욱 가속화된 것 같다. 주문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출 같은 은행 업무도 대면이나 통화 없이 앱에서 비대면으로 가능해졌다. 이와 관련해서 '콜 포비아(Call Phobia)'라는 말이 새로 나왔는데, 말 그대로 전화를 두려워한다는 의미로 직접 사람하고 말하는 것보단 메신저나 앱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는 현상을 잘 표현해 준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친구랑 떠드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친목 외의 목적으로는 실시간으로 사람하고 대화하는 것이 부담된다. 코딩 용어를 빌리자면 asynchronous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와 별개로 최근 들어서 말하는 것 자체를 잘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말실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문제는 실수를 하고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보통 주변에서 '음? ~라고 들었는데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라고 정정해 줘서 깨닫는다. 이런 일은 생각이 난 대로 그대로 말하면 너무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 같아서 줄여서 말하려다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눈꺼풀 끝이 단정하게 떨어지는 게 좋아서 쌍꺼풀이 없는 것을 좋아해요'를 잘못 줄여서 '눈꺼풀이 없는 것을 좋아해요'라고 말한 적도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4층'을 잘못 줄여서 '계단 없는 4층'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이런 일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나는 글을 쓸 때 우선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두 펼쳐낸 뒤에 정리하는 식으로 한다. 실제로 머릿속에서 사색을 할 때도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습관이 돼서 대화할 때도 자동으로 머릿속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다. 그렇게 생각을 펼치다 보면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데, 그래서 급하게 정리하다가 저런 실수가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쓰여있는 글을 소리 내서 읽을 때도 실수할 때가 많다. 이건 내가 글을 읽는 속도가 빨라서 그런 것 같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글을 빨리 읽는 편이다. 보통 세 시간 정도면 한 권을 읽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빨리 읽기'도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쓰여있는 글을 소리 내서 읽다 보면 말하는 속도가 눈으로 읽는 속도를 못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발음이 꼬일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글자를 건너뛸 때도 있다. 물론 '그냥 천천히 읽으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긴 글을 읽어야 할 때면 읽기 전에 그렇게 다짐을 하고 시작한다. 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자동으로 눈이 다음, 다다음 단어로 가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점점 글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글의 가장 큰 장점은 실수를 해도 고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러한 글뿐만 아니라 메일을 하나 보낼 때도, 혹은 메신저나 코멘트 하나를 쓸 때도 정말 막역한 사이가 아니면 여러 번 확인하는 편이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진행돼서 한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말'이라는 수단에 두려움이 더 커진 것 같다. 안 그래도 말수가 적은 편인데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나서 더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독서토론은 여전히 좋아한다. 아마도 독서토론은 애초에 다들 깊은 내용을 나누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는 시간을 기다려줘서 그런 것 같다. 혼잣말이라도 자주 하면서 실제로 목소리를 꺼내는 것에 익숙해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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