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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Mar 06. 2023

스스로 불편해지고 있지는 않는가

팀원들하고 잡담을 하다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잔 루이즈 칼망' 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이 이야기가 나오게 된 기사에 따르면 그녀가 122세까지 장수한 비결은 부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났고 빈센트 반 고흐에게 미술을 배우기도 했으며 일을 한 적도 없고 항상 가정부가 있어서 요리를 하거나 물건을 사러 나갈 일도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면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았기에 장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칼망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돈이 많다는 것보다 그분의 생활 습관이 더 인상적이었다. 오래 사신 분이라 하면 규칙적인 생활에 몸에 나쁜 것은 멀리하는 바람직한 생활을 하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분의 생활 습관은 와인과 초콜릿 그리고 담배 두 개비였다고 한다. 실제로 117세까지 흡연을 하셨다고 하며 열심히 운동을 하지도 않으셨다고 한다. 이 분이 특이한 경우인가 하고 찾아보니 이런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117세가 넘으신 수잔나 무사트 존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베이컨을 드시고 106세가 넘으신 엘리자베스 설리번 할머니는 매일 탄산음료를 3캔씩 드시며 프레드 블룸 할아버지는 115세까지 매일 담배를 피우셨다. 멀리 서양까지 가지 않아도 119세 돌아가신 일본의 다나카 가네 할머니도 초콜릿과 콜라를 즐겨 하셨고 우리나라에는 심지어 48년 동안 매일 3끼를 라면만 드신 92세의 박병구 할아버지도 계신다.


이 이야기들을 보니 내가 다이어트에 고통받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힘들어하면 다이어트 효과보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가 더 크겠다'라고 장난삼아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쩌면 이 말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오래 산 분들이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 식습관 같은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같이 들었다. 우리가 건강에 좋다고 하면서 신경 써서 챙기는 것들이 과연 진짜로 효과가 좋을까? 물론 당연히 효과가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챙기는데 드는 시간, 비용, 스트레스보다 효과가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괜히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파민네이션>에 따르면 우리는 과거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느낀다. 세계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벨기에, 프랑스,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2008년보다 2018년에 덜 행복했다고 한다. 1990년보다 2017년에 우울증 사례는 50%가 증가했고 다양한 염증이나 근육통 사례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꾸준히 증가했다고 한다. 과거보다 자유에서도 기술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진보했음에도 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이유를 이 책에서는 우리가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사소한 불편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벗어나려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더욱 고통 덩어리라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기만 한 것일까?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해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우리는 모든 것을 챙길 수 없다. 시간도 부족하고 비용도 부족하고 사람이라면 의지가 부족할 때도 있다. 이렇게 실패한 나아짐은 스트레스와 자학으로 진화해서 오히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발전하면서 다양하게 연구된 우리가 나아질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홍보와 선전이, 그리고 그 방법들로 나아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모든 것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에겐 역으로 도태를 각인시키는 불행과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서 흔히 인식되는 나아짐의 방향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저는 갓생을 살진 않을 겁니다>에서 말했던 것처럼 갓생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갓생이라는 단어가 너무 유행한 나머지 갓생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현상이 생겼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는 나아짐이 내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인지, 혹은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서 억지로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더 성장하고 나아지려는 것은 옳다. 하지만 스트레스까지 받아 가며 너무 치열하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난 내가 꼭 행복하지 않아도 돼>에서 정담이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대충 열심히"사는 것은 어떨까. 어떤 것들은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고, 어떤 것들은 나 정도면 괜찮지 하고 넘어가고, 어떤 것들은 이 정도는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넘어가는, 나 자신에 대한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꼭 필요하거나 하려고 다짐한 것에서도 현재 내가 가능한 만큼만 걱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일 텐데 어느새 보니 이것도 저것도 해야지 해야지라는 말만 하고 안/못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자책만 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챙기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할 목록에 대해 일렬로 순서를 매겼다. 그래서 맨 앞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해야지 하는 다짐도 계속하고 나를 다그치기도 하지만 그 뒤에 있는 미래의 목록에 대해서는 굳이 현재로 당겨와서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많은 상황들과 부딪히며 살면서 외부로부터 생기는 스트레스들도 정말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까지 힘들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나 자신을 토닥여주지는 못할망정 괜히 나를 스스로 못난 사람을 만들어가면서 스트레스를 창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나라도 나를 품어주고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자존감이, 의도적으로 더 나아지려는 것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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