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하지 아니하게 넉넉히 잡은 여유
사람은 자신의 반대의 것을 추구한다고 한다. 생머리는 파마를 하고 싶어 하지만 곱슬머리는 머리를 펴고 싶어 한다. 어린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만 어른들은 학창 시절을 그리워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인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보인지,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인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나도 요즘 약간 그런 것 같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잠깐이라도 여유를 부릴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사실 여기서 부리는 여유도 거창한 게 아니다. 뛰면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를 다음 신호에 건너기. 계단으로 가거나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에서 걸어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에서 가만히 서서 올라가기.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으면 다음 꺼 타기. 천천히 터벅터벅 걷기. 예시에서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여유는 대부분 퇴근길에서 부린다. 아무래도 가장 늦장을 부리고 싶지만 가장 바빠야 하는 출근길과 대비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능을 두면서 퇴근을 하면 더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때로는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휴일 오후에 약속이 잡히면 능을 두고 일찍 나가서 약속 장소 근처 카페에 자리 잡은 뒤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이러면 약속에 늦을 일도 없거니와 독서시간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이사하기 전 분당에서 살았을 땐 서울에서 약속이 끝나면 일부러 지하철이 아닌 빨간 버스를 타고 집에 오곤 했다. 지하철이 시간은 더 빠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서 가야 하기 때문에, 거의 확정적으로 앉아서 갈 수 있는 버스를 타서 오는 길에 책을 읽곤 했다.
때로는, 낭비 없이는 낭만을 만들 수 없어요.
여유라는 게, 능을 둔다는 게, 때로는 시간 낭비처럼 여겨질 수 있다. 더군다나 갓생, 부업 같은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최근에는 chatGPT의 등장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생산성을 겨뤄야 하는 시기가 오면서 더욱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에 대한 압박감이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금강선 디렉터가 했던 말 처럼, 낭만은 낭비에서 오는 법이다. 냉정하고 치열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멈추면 남들에게 뒤처질 것 같더라도 가끔씩은 한숨 돌리며 나 자신을 위해 능을 두어보는 것은 어떨까.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에 아이스크림 같다고 했다. 거창한 무언가를 하진 않더라도 일상에서 잠깐씩 만들어보는 여유가, 다음 걸음을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