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놀다

무언가를 몹시 그리며 동경하다

by 리타

아이유의 조각집 앨범에 있는 <너>를 듣다가 이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귀가 안 좋아진 이후로는 단어가 정확히 안 들릴 때가 많아서 앞뒤 문맥과 대략 들린 발음으로 유추하곤 한다. 그래서 노래에서 이 단어가 들렸을 때도 처음 들어본 표현이라 당연히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흐느낀, 흩어진, 흩날린 등 여러 단어로 유추해 봤지만 아무리 다시 들어도 그 단어로 정확히 들리지도, 문맥상 의미가 맞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사를 찾아봤고, '흐놀다'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득히 떨어진 곳에서 끝없이 흐노는 누구를 알까


흐놀다. 그립다.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다. 미국에 교육 프로그램 갔을 때도 딱히 한국 생각이 난다거나 하지 않았고 처음 자취할 때도 집 생각 없이 바로 잘 적응했던 것 같다. 이 표현을 보고서 내가 흐노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확실하게 생각나는 게 없었다. 과거처럼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리기보단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리움이라는 표현을 쓸 땐 주로 과거였던 그리움이 현재의 만족이나 미래의 기대로 바뀐 순간이다. 그래서 '아 그래, 이 맛이 그리웠어'처럼 과거형으로는 가끔 써도 '~가 그리워'처럼 현재의 감정으로서는 잘 안 쓰는 것 같다.


최근에 읽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 책에서 모리 교수님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현재의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치고 힘든 현실에 과거에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내가 그리움에 어색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행복했던 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삶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고, 행복했던 과거의 인연들과 지금까지 쌓아온 역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은 하고 싶은 게 많아 오히려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무언가를 흐노는 것은 잘못된 감정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흐노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는 증거이다. 이에 매몰되어 현재를 비관하지만 않는다면, 추억 상자에서 가끔씩 행복을 꺼내보는 것은 자존감을 채워주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리움은 그 행복이 내 안에서 계속 살아있게 해주기도 한다. 위의 책에서 모리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 정말 감명 깊었던 문장이 있었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


이전에 <칵테일을 남긴다>라는 글에서 누군가 나를 기억해 준다면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표현을 썼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움은, 어쩌면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흐노는 동안에 그 감정 안에서 나의 행복했던 추억은 영원히 살아 숨 쉬며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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