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특히 수도권은 거주 지역과 업무 지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설계되었다. 그래서 출근시간이나 퇴근시간에 대부분 사람들의 이동 방향이 비슷하다. 하지만 '대부분'이라는 표현에는 그 반대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내 출근길은 업무 지역인 역삼동에서 출발해서 거주 지역인 분당으로 향한다. 그래서인지 특히 지하철역 근처에서는 90% 이상의 사람들이 역에서 나와 각자의 건물로 향할 때 나만 거꾸로 걸어간다. 그렇게 반대 방향의 인파를 뚫고 가다 보면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된 느낌이다. 다만 연어는 몸으로 부딪히면서 스스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반면 나는 마주쳐오는 사람들과 왼쪽 오른쪽의 눈치게임을 끊임없이 해야 된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 회사 건물의 장점 중 하나는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출구 계단 옆 전용 입구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건물 지하 1층이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적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많으면 많은 대로 곧 엘리베이터가 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고, 적으면 적은 대로 편안히 기다리면서 글 하나를 읽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왔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이미 열려있는 경우, 특히 맨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에는 서로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나는 나대로 잠깐만요 소리를 지르며 달려갈지 안 타는 척 보낼지 고민하고, 그 사람은 순간의 눈치로 열림 버튼을 눌러야 할지 고민하는 게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는 내향인이라 결국 보내는 쪽을 선택하고 안 타는 척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문이 닫히고 올라가면 다시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오늘 이 눈치게임도 서로 참전 의사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사람이 없어서 엘리베이터 안쪽에 타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타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방금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온 사람이 잠깐만요 하면서 달려왔다. 하지만 맨 앞에 있던 사람이 닫기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는 달려오는 사람 눈앞에서 문이 닫히면서 그대로 올라가버렸다. 살짝 충격적이면서도 어쩌면 내가 엘리베이터를 보내는 쪽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도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판단보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아마 예전이라면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 -> '배려심이 부족해서 그런 걸 거야' -> '저 사람은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라고 판정해 버렸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이 광경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어쩌다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였다. 살아가면서 어떤 경험을, 어떤 사연을 가졌기에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가 궁금해졌다. 요즘 에세이를 많이 읽다 보니 이런 궁금증이 먼저 들게 된 것 같다. 에세이를 보다 보면 경험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경험이 나오는 조화의 흐름이 느껴진다. 이러한 이야기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떤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면서 판단이 보류되는 것 같다. <비폭력대화>에서 관찰할 때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실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