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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May 17. 2023

F지만 공감은 못 하는 걸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님을 뵈러 내려갔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잡담하다가 MBTI가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약식으로 검사하는 사이트를 알려드리는 김에 나도 다시 검사를 해봤다. 역시나 예상대로 INFP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MBTI 검사를 여러 번 하다 보면 한 번쯤은 바뀐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10년 정도 해봤는데 한 번도 바뀌지 않고 INFP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성향이나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고 실제로 대답이 달라진 항목들도 있는데도 항상 INFP가 나오는 게 신기하다.


중재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성찰적인 성격으로 자기 생각과 감정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 높고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 16personalities


위 내용은 INFP에 대한 설명이다. 이 설명을 읽으면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은 든다. 단 일곱 글자만 뺀다면. 문제는 그 일곱 글자가 "공감 능력이 높고"라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공감 능력이 좋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나랑 가장 오래 같이 산 가족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버지는 반 장난이지만 내게 사이코패스 같은 면이 있다고 했고, 누나는 내가 F가 나온다면 그건 분명 사회화된 T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F가 아니라 T인거 아니야? 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F는 맞다고 생각한다. 실용적, 논리 같은 이성보다는 감정, 감성, 내면의 세계관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느끼는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게,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만 유독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보고 우는 일이 꽤나 많다. 한 달에 몇 번은 우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일로 울어본 지는 까마득해서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혼잣말하듯 자전적인 글을 쓸 때는 내 감정이나 감상을 잘 담아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편지 같은 글을 쓸 땐 거의 딱딱한 말만 써내려지게 되는 것 같다.


이상한 성격이지만 도움이 되는 상황이 하나 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이 힘든 일을 토로할 때 가만히 들어주는 상황이다. 흔히 감정받이, 감정 쓰레기통이라고도 하는 역할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F라면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크겠지만 넘어온 감정의 물결에 점점 지쳐갈 것이다. 이성적인 T라면 가만히 듣고 있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해서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감 능력은 부족하지만 F이기 때문에, 감정이 전이되거나 동화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오랫동안 들어줄 수 있다.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진짜 F가 맞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팀원분이 에니어그램이라는 테스트도 있다고 해서 한번 해봤다. 에니어그램에서는 5w4가 나왔는데, 사색가/탐구자를 뜻하는 5번에 예술가를 뜻하는 4번을 서브로 가지고 있는 유형이다. 그리고 재밌었던 내용이, INFP에게 5w4가 나오는 것은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지만 실제로 발생할 경우 특이한 성격이 된다는 것이다. INFP-5w4는 감정을 중요시하지만 뛰어난 사고력이 이를 억누르려 한다. 그래서 종종 INTP라고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T는 못 되는 것이, 너무 논리적인 판단을 하려 하면 강한 내향적 감정이 이를 거부한다. 그래서 두 자아가 충돌하다가 보통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가장 논리적인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설명이 있었는데, 확실히 INFP의 설명을 읽었을 땐 갸우뚱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가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시 사람을 16개만으로 분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에니어그램의 결과를 같이 조합해서 봤던 것처럼, 다른 정보를 같이 조합해서 봐야 더 자세히 나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했던 것은 모두 인터넷에 있는 약식 검사라, 정식 검사도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글의 마무리는 자랑 겸 F임을 변론하는 마음으로 소개하는, 최근에 완성한 인테리어 작품이다. 이사온 뒤 두꺼비집을 어떻게 참신하게 가릴까 하다가 벨라루나 달 무드등 제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두꺼비집을 가릴 겸 달의 배경에 맞는 밤하늘 액자를 구해서 달고, 그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무드등을 달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동그라미에 고양이를 넣으면 딱 내가 좋아하는 감성이 될 것 같아서 발품 팔아 정확한 포즈와 사이즈의 고양이 스티커를 찾아내서 붙였다. 마지막으로 마침 두꺼비집이 현관 옆에 있어서 현관 등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모션센서를 구해서 설치하고, 서로 다른 회사에서 만든 무드등과 센서는 바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전선을 잘라서 직접 연결해 완성했다. 달 고양이 감성 하나를 위해 이 정도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면 F라고 봐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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