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끼

밤에 자다가 마시기 위하여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

by 리타

내 침대 옆에는 6칸짜리 작은 책장이 있다. 자기 전 작은 조명을 켜고 삼각 쿠션에 기대 책을 읽기에 완벽한 배치. 그 역할에 맞게 두 칸은 읽을 책, 두 칸은 읽은 책, 한 칸은 공부 책의 공간이다. 하지만 손이 닿기 가장 편한, 머리맡이라고 칭한 마지막 한 칸은 책의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독서를 끝내고 침대가 본연의 역할을 할 때를 위한 공간이다. 가끔씩 끼고 잘 교정기. 손목이 욱신할 때 끼고 잘 손목 고정대, 비염인들은 언제나 옆에 두어야 하는 휴지와 비염약, 잠이 안 올 때를 대비한 수면유도제, 그리고 필요할 때 이 약들을 바로 먹기 위한 자리끼가 이곳에 있다.


사실 자리끼는 다시 충전해두는 과정까지 생각해 보면 에너지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그냥 자다가 깨서 물을 마시러 가는 과정과 놓여있는 자리끼를 마시고 충전하는 과정을 비교해 보자.


그냥: 부엌으로 간다 - 물을 따라 마신다 - 침대로 간다

자리끼: 마신다 - (나중에) 컵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 물을 따른다 - 물이 든 컵을 들고 침대로 간다.


이동 거리는 비슷하지만 이동할 때 컵의 무게가 추가된다. 침대로 돌아올 때는 물의 무게까지 추가된다. 그럼에도 자리끼를 두는 이유는 여유다. 자다가 깬 수면 위의 표류자는 아직 일부가 가라앉혀진 상태다. 정신도, 의식도, 그 안의 여유도 일부만이 수면 밖으로 나와있다. 게다가 다른 곳보다 두세배의 중력을 가진 침대에서 부엌으로 가려면 정말로 힘든 여정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낮에는 다르다. 정신도 멀쩡하고 두 다리도 저항 없이 움직일 수 있다. 당연히 침대에 물 한 잔쯤 놓아주는 아량을 베풀 수 있다. 미래의 내게 보내는 한 잔의 여유가 바로 자리끼인 것이다.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여러 번 마주치는 질문이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실 건가요?" 나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잘못했던 선택을 바꿨을 때의 기대감보다, 그 나비효과로 지금의 삶이 뒤틀리는 것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즘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편이다. 유토피아 같은 낙원의 삶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 아닌가 하는 평화로움. 그래서 고민을 했다. 힘들면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고, 부족하면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데 현재에 만족하고 평안하면 그냥 안주하면 되는 것인가?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확히는, 이렇게 여유로울 때만 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결론은 나눔이었다. 나눔은 여유를 나누는 것이다. 물질적인 여유를, 시간적인 여유를, 혹은 이것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그 모두를 초월하는 마음의 여유를 나누는 것이다. 나는 성인군자는 아니다. 성인군자상을 열렬히 지향하지도 않는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인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에 적합한 사람이다. 내 삶이 깜깜한 밤이었다면 내 앞길을 찾기에 급급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빛이 드는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여유를 나눠보고 있다. 거창하진 않다. 주기마다 헌혈 한 번. 한 달에 한 번 배식봉사. 딱 자리끼 한 잔 정도의 손길을 내미는 것. 이것이 내가 여유를 만끽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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