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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Aug 11. 2023

책임의 자격

지금은 살짝 사그라든 것 같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전도체로 이야기로 세계가 시끌시끌했다. 그냥 전도체도 아닌 초-전도체. 영어로도 무려 'super'conductor. 이런 대단한 접두사까지 붙은 초-전도체 이야기들을 할 때 나는 다른 초-를 생각한다. 바로 초-신성이다. 초전도체처럼 영어로 했을 때 'super'nova로 'super'라는 말이 앞에 붙는 대단한 친구다. 나머지 두 글자를 한자로 보면 새로울 신(新)에 별 성(星)이다. 이를 그대로 직역하면 '엄청난 새로운 별'이라서 별의 탄생과 관련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별이 죽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별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의 폭발을 일으키면서 하나의 은하에 맞먹는 밝기로 빛나는데, 이로 인해 평소에는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별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신성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도 모른 채로 있다가 죽음으로 인해서야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는 것에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숙연해지는 현상이다. 얼마 전에도 초신성 같은 일이 있었다. 지금은 초전도체, 칼부림, 태풍 등으로 사회에서는 관심이 멀어진 것 같지만, 서이초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초신성의 빛은 아직도 내 머리에는 잔상이 남아있다.


이런 일을 보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오래 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원인이라고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은 체벌 금지와 함께 교권의 추락이다. 체벌이 왕성했다가 점점 사라지는 과도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체벌이 교육에 효과적이라는 것에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체벌이 안 좋은 제도라는 것도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체벌이 부활해야만 이 일이 해결된다면 너무 슬픈 현실이다. 이런 슬픈 현실에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를 위로하기 위해 어떻게든 다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쪽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해외의 사례부터 살펴봤다. 먼저 일본의 경우에는 큰 도움이 안 됐다. 옆 나라여서 그런지 일본 또한 추락한 교권으로 큰 골치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이러한 현상이 먼저 발생했다. 교사들에게 갑질하는 학부모들을 지칭하는 '몬스터 페어런트'라는 단어도 이때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는 미국은 어떤지 찾아봤는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의 경우 아이의 문제 행동이 심하다고 판단하면 학교가 학부모를 소환할 수 있고, 이때 부모가 즉시 와서 데리고 가지 않으면 방임으로 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학생이 장기적으로 교정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문제아의 학부모를 방임으로 고발이 가능하다. 즉, 학생의 행동에 따른 모든 책임은 학부모에게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학생일 때만 해도 비슷한 정서가 있었다. 어릴 때 장난기가 많고 사고도 종종 치는 악동이었는데, 큰 사고를 치면 부모님이 선생님께 애 교육을 잘못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신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얘기를 들어보면 전혀 다른 것 같다. 학습 분위기를 방해하는 아이들에게 체벌도 아니고 뒤로 나가거나 반에서 나가라고만 해도 아동 학대라면서 오히려 항의한다든지, 심지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쳤길래'라고 화를 내는 게 과연 정상일까. 아이가 학습 분위기를 방해한 것에 대한 사과가 먼저이고, 이런 아이의 행동을 교정해야 하는 책임은 부모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책임이란 건 누구나 지기 싫다. 모두가 권리는 누리고 싶고 책임은 지기 싫다. 하지만 책임을 지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히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책임은 중요하다. 잠깐 AI 이야기를 해보자. AI가 우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처음 이러한 질문이 나왔을 땐 AI는 할 수 없고 인간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AI는 고도의 복잡한 계산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알파고가 바둑을 제패하면서 반박되었다. 글, 그림 같은 창작 활동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생성형 AI가 나오면서 무너졌다.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능력적으로 더 이상 AI가 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AI에게 대체되지 않고 사람이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이 책임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금도 운전할 때 AI를 활용한 기능이 많이 들어가있지만, 아직은 운전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쳐있다. 운전자는 여전히 운전석에서 주의를 살피고 있어야 한다. 운전석이라는 개념 없이 아무도 신경 안 써도 되는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할까? 나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때론 정답이란 것 자체가 없는 문제가 있고, 이런 상황에서 과연 AI 기술이 책임을 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예를 들어 트롤리 딜레마라고 부르는 아래 문제에선 어떻게 될까.


광차가 제어 불능 상태가 되어 이대로는 선로에 서 있는 5명이 치여죽고 맙니다. 전철기를 돌리면 전차를 다른 선로로 보냄으로써 5명을 살릴 수 있지만 그 다른 선로에 1명이 있어서 그 사람이 치여죽고 맙니다. 어느 쪽도 대피할 시간은 없습니다. 이때 도덕적 관점에서 이반이 전철기를 돌리는 것이 허용됩니까?
출처: 위키백과


사람에게 물어봐도 저마다 대답은 다르겠지만 누구는 정답이고 누구는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말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AI도 결국 어떤 선택을 하긴 할 것이다. 이때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은 과연 사용자가 질까 제작자가 질까. AI의 선택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운전자는 단순히 운전 기술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운전하다가 일어난 일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책임을 지고 피해자를 납득시키기 어려운 AI에게 쉽게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먹여주고 재워주고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면, 나중에 따듯한 피부와 감정을 가지고 더 좋은 교육 알고리즘과 생산성을 가진 기계가 나왔을 때 대체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법적으로도 친권자는 미성년자의 최우선 법정대리인으로, 아이에 대한 책임의 지위를 지니게 되어있다. 이러한 부모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남에게 넘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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