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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Aug 15. 2023

우리나라는 육식동물이다

친구한테 박보영님이 나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같이 보자는 카톡이 왔다. 덕질을 안한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예전에 가장 좋아하던 배우였기에 어떤 영화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오케이를 했다. 배우를 보고서 본 영화지만 보고 나서는 영화밖에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좋은 영화였다. 배우분들의 연기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그 내용에서 울림과 여운을 주는 영화였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바닥까지 내려간 사건들을 다루는 영화다 보니 보고 나서도 며칠 동안 '무엇이 최선의 방법일까',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왜 그랬을까' 하면서 많은 생각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영화였다.


그중 '그들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론은 자원의 부족이었다. 보면서 계속 '농사 같은 자급자족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어차피 망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였다. 나부터 생각해 봐도 갑자기 세상이 망해서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야 하니 농사를 지어보라고 하면 시도야 해볼 수 있지만 성공하긴 어려울 것 같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 이를 해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농사에 재능이 없어 스스로 자원을 충당할 수 없으니 외부에서 쟁취해야만 했고, 불확실한 결과 속에 성공할 땐 한없이 행복할 수 있지만 실패하거나 사고가 나는 순간 모두 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마치 사냥을 하는 육식동물처럼.


자연이라는 단어에는 보통 평화롭다는 느낌이 따라온다. '평화로운 자연'이라 했을 때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숲이나 바다의 장면을 이야기할 것이다. 풀을 뜯는 초식동물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육식동물을 등장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목숨을 거는 추격전에 피가 낭자하고 시체를 처리하는 스캐빈저들의 모습은 평화롭다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풀은 왜 평화로울까. 물은 무생물이어서 그렇다 쳐도 풀이나 나무 같은 식물들은 동물에 비해 왜 더 평화로운 느낌을 줄까. 그리고 왜 초식동물은 육식동물보다 더 평화로운 느낌일까. 그 해답은 타고난 재능이 만든 의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식물에 비해 사람이 고등하고 대단한 생명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식물은 엄청나게 대단한 재능을 가진 생명체다. 그 재능의 이름은 광합성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햇빛은 지구에게 유일하게 무한히 무상으로 공급되는 외부 자원이다. 이 외의 지구에 존재하는 자원은 모두 어떻게든 쟁취해야만 얻을 수 있다. 남들은 모두 열심히 자원을 쟁취하고 떨어지면 다시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혼자서만 가만히 있어도 무한히 자원이 공급받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식물이다. 경쟁이 없으니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


초식동물은 광합성의 재능은 없지만 대신 식물에게서 지방과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정확히는 식물을 지방, 단백질, 비타민 등으로 만들어주는 미생물들을 위나 장에서 키우고 있다. 따라서 비교적 얻기 쉬운 풀을 뜯어 먹으면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육식동물이 가장 무능하다. 이 영화에 나왔던 사람들처럼 스스로 자원을 만들어낼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이 잘 만들어 저장해둔 영양소들을 빼앗는 방법밖에 없다. 이 과정에는 당연히 여러 위험과 갈등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 시스템의 의존성도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은 다른 동물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초식동물은 식물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 연쇄적으로 식물이 없어도 살 수 없다. 즉, 먹이사슬의 위로 갈수록 생존의 불확실성이 점점 증폭된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육식동물은 평화라는 단어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회가 각박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육식동물에 가깝다. 무력이 강해서 다른 나라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의 재능이 부족해서 다른 나라에 대한 의존성이 크다는 의미다. 여기서 국가의 재능은 원유, 천연가스, 희토류처럼 국토에 내재된 자원을 의미한다. 복지가 좋고 행복한 나라라고 하면 북유럽 국가들을 많이 생각하는데,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가 좋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 많아서이다. 실제로 인당 GDP를 살펴보면 상위권에 북유럽 국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국토에서 원유와 천연가스가 엄청나게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번 돈을 그대로 복지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자원들을 캐는 노력이 들긴 하지만 경쟁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의존 관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비교적 평화롭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마치 육식동물처럼 스스로 자원을 만들어낼 재능이 없다. 기껏해야 인적 자원뿐이라서 여기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다.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입시와 취업은 점점 힘들어지고 생산성으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이유도 가진 게 인적 자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다양한 의존적 관계에 묶여있다 보니 주변 국가들의 정세에 쉽게 흔들리는 불확실성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나 하나 행복하게 사는 것은 가치관과 생각을 단련하면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우리나라가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육식동물도 배부르게 먹고 낮잠 잘 땐 평화로워 보인다. 우리나라도 편안한 낮잠 속에 편히 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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