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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Mar 04. 2024

윤년

윤년, 정확히는 2월 29일을 좋아한다. 흔하지 않은 특별함 자체로도 매력이 있지만, 어긋난 것을 정돈시킨다는 의미에서 마음에 든다. 윤년이 생긴 이유는 태양의 공전 주기가 정확히 365일이 아닌 대략 365.242190쯤의 이상한 숫자(엄밀하게는 항성 주기, 회귀 주기 등 더 깊은 내용도 있지만 일단은 넘어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맞추기 위해 하루가 더 생기는 윤년을 만들었다. 보통 4년에 한 번이라고 하지만 윤년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코드에서 날짜 관련 예외 처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조금 더 사족이 붙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4년에 한 번이지만 100의 배수일 땐 제외하고 하지만 400의 배수일 땐 다시 포함한다는 게 현재 통용되는 규칙이다. 0.242190에 최대한 쉽게 근사하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우선 '4년에 한번'은 0.25를 의미한다. 그리고 '100의 배수는 제외'에서 0.01이 빠져서 0.24가 된다. 마지막으로 '400의 배수는 포함'을 통해 다시 0.0025를 더해서 0.2425를 맞춘 것이다. 물론 이 숫자 또한 0.242190이랑은 0.000310 정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대략 3200년에 하루 정도 오차가 생긴다고 한다. 이 오차를 더 줄이기 위해 '4000의 배수는 제외'라는 규칙을 추가해서 0.00025를 다시 빼서 0.24225로 근사하는 걸 제안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3200년 정도의 오차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넘겨도 되기에 일단은 4, 100, 400의 규칙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24년 전의 윤년인 2000년은 400년에 한 번씩 오는 윤년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윤년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특별함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는 게 아쉽다. 다음에 오는 특별한 윤년은 4의 배수이지만 윤년이 아닌 2100년일 텐데, 과연 그때까지 이 특별함을 만끽할 정신을 가지고 살아있을 수 있을까.


지구의 시간은 며칠 전 2월 29일을 통해 정돈이 되었지만, 나의 시간은 요즘 혼돈 속에 있다. 쌓여있는 할 일들의 큐에서 그날그날 우선순위를 계산하며 하나씩 빼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 만에 끝날 일들이 아니라서, 다시 큐에 넣어두고 진척도를 예측해서 새 우선순위를 계산하는 걸 반복한다. 겉으로는 질서정연하게 처리되는 것 같으면서도 머릿속은 이거 조금 저거 조금 뒤죽박죽 혼돈이다. 그럼에도 재밌는 건, 그 엉킴 속에 엉김이 생긴다는 것. 생각의 조각들이 연결되어 글이 되는 것처럼, 여기저기 과거에 했던,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서로 의도치 않게 연결되어 큰 그림이 되어가고 있다. 일단 이것저것 해두면 당장은 쓸모없어 보여도 다 언젠가는 자산이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러면서 늘고 있는 건 선택과 집중. 단순 유희의 시간을 제외해도 모든 걸 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지경이 왔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잠이 우리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빨간약을 먹고 말았다. 해야 할 게 있으면 잠을 줄여서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밤을 새는 행위에 미래의 나에게 죄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워렌 버핏이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요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벼랑 끝에서 버리거나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정말로 좋아했던 것인지 그것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지 느껴지고 있다. 바쁘니 나중에 여유 될 때 하자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바쁜 와중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 바쁜 와중에도 하고 있는 건 이 글을 쓰는 것과, 홈메이드 콜드브루를 진(술 맞습니다)으로 내려보기. 커피와 진의 풍미를 담은 날카로운 칵테일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칵테일을 부드럽게 만드는 다일루션(물에 희석되는 것)의 영향을 최소화해보고 싶어서 진으로 직접 콜드브루를 내려보려 한다. 이런 생각들은 바쁜 와중에도 계속 나는 게 역시 사람 속은 나 자신이어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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