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의 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집니다. 봄이라는 계절이 다가올 때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그중에서도 특히 봄을 상징하는 꽃들 중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진달래와 벚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저의 고향에서는 봄이 오면 진달래가 만발하며 따뜻한 봄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봄이 오기까지 어린 마음에 망울진 진달래나무를 보며 '봄아, 어서 와'라고 부르며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봄날에는 뒷산에 가득 핀 진달래꽃을 꺾어다 창문의 화분에 꽂아 놓으면 향기가 오래오래 갔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도 잠시, 꽃이 시들면서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꽃나무는 앙상해집니다. 그렇게 진달래가 지고 나면 다른 꽃들이 피어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진달래는 그동안 여러 계절을 견디며 다음 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음 봄이 오면 다시 그 아름다움을 되찾습니다. 잠깐 피었다 지지만 창가에 꽃아 두었던 진달래 향기가 아직도 저의 나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그 향기는 그곳을 떠나온 후에도 머무르며, 추억과 그리움을 상기시킵니다.
한국에서는 봄이 오면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며 봄의 도래를 알려줍니다. 벚꽃이 가득 핀 명소를 찾아가 사진으로 그 순간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잠시 벚꽃도 빠르게 지나가는 봄을 대변합니다. 벚꽃 잎이 흩날릴 때는 이미 예쁘게 꾸며진 사진이 휴대폰 갤러리에 가득해집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다음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도 찾아오고 다시 따뜻한 봄이 오기까지 계속 기다립니다.
진달래와 벚꽃, 이 두 꽃은 저에게 한반도의 봄과 같습니다. 이 두 꽃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삶과 통일에 대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북한에서의 진달래는 고향의 추억을, 남한에서의 벚꽃은 새로운 시작을 선물합니다. 두 꽃은 저에게 서로 다른 경험과 추억을 지니고 있지만, 한반도의 봄을 완성하는 두 요소입니다. 진달래는 그리워하게 만들고, 벚꽃은 기대하게 합니다.
저를 비롯한 누군가는 그립고 아픈 고향과 새로운 삶, 그리고 통일에 대한 기다림을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분단된 나라가 하나가 될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이 오면 진달래와 벚꽃이 함께 피어나는 그런 봄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날이 오면, 저의 마음속에 깊이 파묻힌 진달래의 향기와 새로운 고향의 벚꽃이 함께 피어나는 그런 봄이 오리라 믿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미 찾아온 봄의 따스한 바람과 햇살, 또 어떤 이에게는 이미 지나간 봄의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