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선거 그리고 자유

실패 속에서 진짜 나를 보여주다

by Rita

고독은 날 단단하게 했고, 혼자서도 견뎌내는 법을 배우게 했다.


외로움이 익숙해지며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대신, 당장 행동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던 때 고등학교 3학년(미국 11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미국은 고등학교 4학년(12학년)이 마지막이다.


그해 봄에도 한창 학생회장 선거(Student body president)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치 대통령 선거처럼 직접 홍보 포스터나 전단지를 만들고,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회장이 되면 내세울 공약을 발표하곤 했다.


끝까지 조용히 친구들의 눈에 띄지 않고 학교를 다닐 생각이었다. 그날도 밥을 굶고 도서관에서 점심시간을 버티는 중이었다. 다른 학생들과 점심을 먹지 않고 매일 책이 있는 곳으로 오는 내가 도서실 선생님에게 불편해 보였나 보다.


보통의 지도자는 아마 걱정부터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의 이국적인 다름을 앞세워 나에게 영어를 잘 못하냐고 물어보았다. 처음으로 그 공간에서 입을 뗀 나는 당연히 유창한 발음으로 “나는 미국인인데 영어를 못하면 어떡하냐”고 이야기했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나의 다름을 불편하게 지적하는 이에게 나는 늘 그들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사실을 알려준다. 나는 귀화도 했기에 법적으로도 미국인이었다. 그리고 9살 때부터 17살의 나이까지 미국식 교육을 받았기에 영어는 모국어인 한국어만큼 똑같이 잘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점심을 먹으러 가라고 지적한 학교 도서관 책임자 덕분에 나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점심을 먹던 중 갑자기 8년을 눌러왔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주체할 수 없는 화는 나에게 신기하게도 용기를 주었다. 세상 밖으로 나갈 시간이 왔다고 확신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을 피하려 화장실로 도피했었다. 이제 그 눈치를 그만 보고 싶었다. 내가 왜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혼자 밥을 먹는 걸 창피해하거나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가?


그렇게 나는 어제였으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을 학생회장 선거에 신청했다. 신청하러 현재 학생회 임원들이 앉아 있는 접수실에 갔을 때 그들은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학교에선 투명망토를 가진 것처럼 최대한 안 보이게 살아야지 하는 목표는 성공한 듯했다. 그렇게 단 한 명의 친구를 가진 채 학생회장 선거에 참여했다. 참고로 회장 후보들은 지원만 하면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다. 친구가 없어도, 추천해주지 않아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또다시 기대했다. 나의 진실된 이야기를 통해 친구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내 연설을 들으면 학생들이 감동해서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나는 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회장 선거를 앞세워 연설의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서 포스터를 만들고 홍보도 혼자서 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혼자 앉아 점심도 먹지 못했었다. 그런 내가 유유히 나를 이렇게까지 드러내는 행위를 취한 건 학창시절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번은 소리쳐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봐달라고,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다며.
나의 다름을 이해해주고 보듬어 달라고.

그렇게 몇 주를 혼자 홍보한 뒤, 드디어 투표의 날이 다가왔다. 투표 전 각 후보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크게 떨리는 마음으로 내 차례가 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준비해온 대로 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는 어디에서 왔어?” 내가 처음 미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매 순간 들려온 질문이었어.

나는 9살 때 한국이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state)보다 더 작은 나라에서 이민을 왔어. 한국이라는 곳은 중국이나 일본의 일부가 아니야. 그리고 뉴스에서 자주 듣는 북쪽의 그 공산주의 나라도 아니야.

이 작은 나라에서 온 나는 매 순간 이곳에서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 싸워야 했어. 그리고 나는 매분 매초 어떻게 하면 너희의 마음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아왔어. 누구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줄 안다고 장담해. 이 깊은 고민은 자주 나 자신을 억누르고 진짜의 나를 없애고 감춰왔어. 이제는 너희에 대한 배려와 함께 나의 넓고 독특한 시야로 우리 학생들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려고 해.

비록 너희가 처음 보는 피부색과 생김새를 하고 있거나 새로운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고 있다고 해서 내가 너희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차별이야.

다가오는 학기에는 새로운 통찰력으로 우리 학생들의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리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러한 꿈을 함께 이어 나갈 수 있게 나에게 투표해 주길 부탁할게.


그렇게 박수갈채가 지나고, 당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문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다. 나의 용기를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예상은 했었지만, 나름 획기적인 반전이 있을 거라 혼자 기대했었나 보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고 공부도 잘하며 풋볼 팀의 스타였던 남자아이가 학생회장이 되었다.


나의 패배는 생각보다 나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며 울부짖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울며 나를 비워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실패가 나에게 마침내 자유를 주었다.


항상 진짜 내 모습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었다. 생김새는 숨길 수 없었지만,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철저히 여러 필터를 걸쳤다. 주위의 백인 아이들을 보며 학습된, 가장 비슷하고 보편적이라고 보이는 말과 행동만 했다.


나의 다름 또한 늘 숨기려 했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늘 “나는 미국인”이라고 대답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졸업이 1년밖에 남지 않았던 물리적 시간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아니면 학창시절 내내 억눌렀던 화가 터진 것일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나는 마침내 패기 있게 진짜 내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같은 상처가 누적되면 담력이 생긴다.


상대가 나를 아시안이라고 놀리며 눈을 찢는 행위를 하거나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듣는다),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차분히 그 사람(bully)을 제지한다. 그리고 반대로 외친다. “너도 네 나라로 돌아가.”


나는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까.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미국 안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언어 폭력에 매일 맞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견디고 있다. 물론 이제는 가장 나답게 버티는 법을 터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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