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Dream

스쳐간 달콤한 꿈처럼

by Rita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가을이 찾아왔고, 미국에서의 첫 개학날이 다가왔다.미국은 이상하게도 9월부터 새로운 학년의 학기가 시작되었다. 모든게 새롭던 그날 난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하였다.


미국 초등학교의 첫날이었다. 특이하게도 아침부터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오전 동안은 나의 영어 능력 시험을 치렀다. 당연하게도 나는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즉 ESL 특수반에 배정되었다.


나의 첫 등장은 공교롭게도 리세스(Recess) 시간이었다. 미국 초등학교는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꼭 놀이터에서 쉬는 시간을 가진다. 한국식 교육에 이미 익숙해 있던 나는, 3학년이 되어 수업시간에 놀아야 한다는 것이 매우 의아했다.


놀이터에 나가자마자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Her name is Yeon, and she has moved here from Korea!

“야—안?” 친구들은 내 이름이 웃기다며 킥킥거렸다. 영어는 다 몰라도 누군가 나를 놀린다는 건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가시고 나서, 나는 금발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금발에 안경을 쓴, 다소 스포티하게 옷을 입은 똑똑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물었다.하지만 나는 처음에 알아듣지 못했다.

Are you from North or South Korea?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바보처럼 보일 텐데.

그때의 긴장감과 나를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은 잊히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내가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웠다. 곧장 그 아이는 손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바디랭귀지를 배웠다.

Are you from North or South?

위와 밑을 가르키던 친구의 손길을 보았다. 나는 전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채 나도 모르게 엄지를 치켜 일으키며 굿 이라고 말하였다.


그날 이후, 나는 ‘북한에서 온 아이’가 되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 친구의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셨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다음 2년 동안 반나절은 본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ESL 특수반에 머물러야 했다. 한국에서는 늘 경쟁심이 강해 무엇이든 1등을 해야만 속이 풀리던 나에게는 곤욕이었다. 빨리 영어를 잘해서 특별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Sweet Dream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을 보내고, 영어로 입이 트일 즈음 4학년이 되었다. 밝고 쾌활한,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 Mrs. Douglas 선생님의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한국에서는 수다스럽고 활발하던 내가 1년 만에 무척 내성적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 날 더글라스 선생님은 우리에게 노래나 시를 지어 발표하라는 숙제를 내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가요를 무척 좋아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올 때, CD와 테이프를 수십 장 챙겨올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나는 당시 한국에서 인기 있던 장나라 언니에게 푹 빠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Sweet Dream이라는 노래를 새롭게 영어로 바꾸어 같은 멜로디로 반 친구들 앞에서 불러보았다. 발표 후 선생님은 나에게 큰 찬사를 보냈고 친구들은 그날부터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고학년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던 학교생활은 그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친구들과 선생님은 2000년대 초반부터 K-POP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것 같았다.


치어리딩


ESL을 졸업할 즈음, 나는 같이 노는 여자아이들 무리가 생겼다. 그 친구들은 학교에서 꽤나 인기 있는 그룹이었다.가장 친한 친구 메건을 따라, 나는 동네 아동 스포츠 센터에 가게 되었다. 프라이빗한 스포츠 클럽이었고, 서로 친한 백인 어머니들이 주도하는 모임이었다.


나의 ‘애살’(경상도 방언: 어떤 일을 잘 해내려는 적극적인 의욕과 정성, 열정) 덕분에 나는 치어리더가 되어버렸다. 미국 사회의 중심에 들어가 보려는 나의 첫 시도였다. 미국 가족들의 주말은 풋볼이 빠질 수 없다. 그 시절만 해도 초등학생 때부터 남자아이는 풋볼 선수, 여자아이는 치어리더가 되는 걸 꿈꿨다.


본래 성격이 활발하고 관심받는 걸 좋아하다 보니, 생각보다 적성에 딱 맞았다. 치어리더 수업이 늘 즐거웠고 기대됐다.무엇보다 친구들의 인정과 소속감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 점점 적응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탄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금세 잊었던 걸까. 아빠의 직장 문제로 우리는 시골 마을 옆 동네로 이사했고, 나는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치어리딩을 하던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를 보여줄 기회도, 이전 학교처럼 내 진가를 드러낼 무대도 사라졌다.


그렇다. 나는 소수자였다. 마이너리티.
대중 속의 소수는 소외감과 차별을 감당해야 한다.
같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보통의 아이보다
백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어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도 겪어보지 못한 성장 과정이기에 이해는 한다.

첫 학교에서 얻었던 인기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어렴풋이 예감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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