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보이, 밥을 버리다

나를 버리는 이유

by Rita

한 9살쯤 되어 보이는 안경을 낀 귀여운 한국 남자아이가 학교 화장실 안에서 도시락통에 있던 김밥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다. 그 김밥은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싱글맘 엄마가 사랑을 담아 만들어준 도시락이었다.

90년대 후반쯤, 그 남자아이는 한국에서 캐나다의 시골 마을로 이민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백인 위주의 한적한 마을에서는 그 누구도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했다. 아시안 남자아이의 생김새나 낯선 음식인 김밥을 받아줄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 음식, 모습까지 모두 거절당한 아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김밥이 그 버림의 시작이었다.


이 장면은 밴쿠버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2022년 영화 「라이스 보이」의 한 장면이다. 나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그 티저 장면만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보고 또 보며 오열을 반복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주다니, 그 공감이 큰 위로와 치유로 다가왔다.


미나리로 시작해 라이스 보이까지, 점점 더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누군가의 공감을 받을 때 우리는 위안을 얻고 위로받는다. 누군가에게 이해받는다는 건, 나 자신이 인정받는 느낌을 준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 ‘인정’을 받는 데에 크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 또한 미국 중부의 시골 마을로 이민 오면서 많은 것을 거절당하고 부인당해왔다.


흔히 말하는 인종차별은 상대가 나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불리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이민 온 이색 인종 아이들은 차별을 넘어 경시당하고 외면받는다. 미움을 받는 것만큼이나 타인의 무관심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민자 아이들은 아직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성장 과정 속에서, 바꿀 수 없는 생김새부터 지적과 멸시를 당한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왜곡되어, 보통의 아이가 그렇듯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부분까지 비하당한다. 생김새를 시작으로 아이의 모든 ‘보편적이지 않은 행동과 말들’이 흠잡히고 비판받는다.


미국에 처음 이민 왔을 때 나는 여전히 밝은 아이였다. 친구 사귀기를 좋아했고, 늘 관심받기를 원했다. 처음 미국 초등학교에 전학 갔을 때는 많은 서양 아이들의 호기심을 샀다. 그 친구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

미국 중부의 시골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동네나 주(state)를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시안 아이를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은 금세 사그라들었고, 그들은 본능을 거스를 수 없었다. 자신과 다른 이를 경계하며 비난했다.


학교 놀이터에서는 늘 혼자 놀았고, 출석 호명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내 이국적인 이름을 선생님이 불안정한 발음으로 부를 때마다, 주위 아이들은 키득거렸다. 나를 가장 먼저 대변하는 ‘이름’조차 이방인으로서는 떳떳하지 못했다.


나를 가장 비참하게 했던 건 점심시간이었다. 첫 몇 달 동안은 엄마가 맛있게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다. 미국 급식은 돈을 내야 했고, 맛이 없는 냉동피자가 자주 나왔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왔다. 엄마는 주로 김밥이나 밥과 반찬을 싸주셨다.


냄새가 강한 김치는 처음부터 넣지 않으셨지만, 매일 식빵 샌드위치를 먹던 친구들에게 나의 김밥은 너무나 낯설고 불편한 음식이었다. 중국에는 그런 음식도 있냐며 아이들이 놀리기 시작했고, 특이한 음식을 먹고 있는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날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펑펑 울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샌드위치만 싸 달라고 말했다. 김밥 사건 이후 나는 나를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를 버리고, 그들의 인정을 쫓기로 결심했다.


미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엄마는 매일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싸주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한식을 포기한 채, 지겹고 맛없는 샌드위치를 억지로 삼켰다. 그렇게라도 나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해지고 싶었고, 사랑 받고 싶었다.


아직 성장 중인 아이에게 비합리적인 질타가 반복되고 세뇌될수록,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미국 중부의 이민 가정 아이는 자신이 세상의 흠이며 비판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이러한 피해 의식을 이겨내기 위해 평생 편견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는 싸우기 전에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견디기 위해 진짜 나의 모습을 감췄다. 늘 다른 미국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며, 나를 받아 달라고 온갖 몸부림을 쳤다.


나를 지워내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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