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먹는 점심

혼자서도 견디는 법

by Rita

매일 화장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홉살 때 미국에 이민 온 후부터, 늘 학교에서의 점심시간은 내 공포의 대상이었다. 처음엔 냄새나는 한식 도시락이 문제였고,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을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오니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모든 인원을 카페테리아에 수용할 수 없어 점심시간이 3교대로 나뉘었다. 매번 교대 그룹이 달라졌고, 그때마다 같이 밥 먹을 친구를 찾아야만 했다. 문제는 나의 유일한 대만계 미국인 3세 친구와 늘 다른 교대 그룹이었다.


미국의 점심시간은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늘 규칙적인 암묵적 틀이 있다. 미국 사회의 계급이 그 카페테리아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물론 이 계급은 고등학교에서만 적용되는 체계였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에게 그 계층은 인생의 전부였다. 어떻게 해서든 그 조직 안에 들어가고 싶었고, 그 사회의 가장 위에 있는 친구들과 머무르고 싶었다.


고등학교 배경의 미국 영화에서처럼, 미국 고등학교는 대체로 운동하는 친구들이 계급의 가장 위에 있다. 특히 풋볼 선수와 치어리더들이 제일 ‘잘 나가는’ 친구들이다. 각 스포츠팀 선수들끼리 그룹이 있었고, 운동은 하지 않지만 매력적으로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의 서클도 있었다. 이 친구들은 사회의 기준에서 외모가 출중했다.


그 외에도 여러 방면으로 그룹이 나뉘었다. 인기 있는 운동선수들의 정반대 친구들도 자기들만에 그룹이 있었다. 대체로 ‘너드(nerd)’라고 불리는 친구들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성적이 중요하지 않았고, 자기들만의 세상이 있었으며, 본인이 좋아하는 과목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타입이었다. 어떻게 보면 천재 기질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너드 그룹 안에는 공부를 잘하면서 교내 밴드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모여 있었다. 미국의 밴드는 기타가 포함된 록밴드 형식이 아니라, 보통 풋볼 경기 중간 해프타임에 공연하는 마칭 밴드(marching band) 악단이다. 마칭 밴드에는 보통 드럼 같은 타악기와 트럼펫 같은 관악기의 여러 종류가 포함된다.


또 다른 비인기 고스(goth) 그룹 아이들은 늘 검은색 옷만 입으며 록밴드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 친구들은 어느 정도 늘 우울해 보였고, 피어싱과 타투를 많이 했다. 한국에서 표현하면 문제아에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이 극과 극의 그룹들 사이에서 나는 중간이 되고 싶었다. 그게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상위 위치라고 생각했다. 그 중간 친구들은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고, 호감형으로 비인기 종목의 운동클럽을 하나쯤 하고 있었으며, 늘 자신감 있어 보이고 학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밝은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집단 속에서도 한 곳쯤은 내가 설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땐 점심시간마다 여러 노력을 해보았다. 운동하는 친구들 테이블에도 가보고, 수업시간에 두세 번 말해본 친구에게도 다가가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늘 두 가지 중 하나였다.


There is no seat for you
너 자리는 여기 없어.


두 번째는 나름 운이 좋은 날이었다. 내 자리는 있었지만, 같이 앉은 친구들은 대화에서 나를 배제했다. 자리는 있었지만, 결국 혼자 밥을 먹는 셈이었다.


이 학교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자 (2세, 3세 제외) 한국인이었던 나는 그렇게 점심시간마다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고, 존재감은 회복할 수 없이 삭제되고 있었다. 이민자 아시안들이 많은 도시 학교에는 ‘아시안 테이블’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 삶을 원망했다. 다른 미국 도시의 한국인들이 당연히 누리는 보통의 학교생활을 왜 나는 가질 수 없는지 안타까웠고, 내가 너무 불행하다고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사랑받으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걸까. 내 못남을 나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존심만 강했던 나는 나를 낮춰 ‘이상한 아이들’(나처럼 혼자 밥을 먹는 친구들) 테이블에는 절대 가서 앉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내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혼자가 되기로 선택했다. 내가 좋아하고 인기 있는 친구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면,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 ‘아무나’와도 인연을 맺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고립을 선택한 나는 엄마가 늘 싸주신 치킨 샌드위치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미국 학교는 보안상, 지정된 교실 외에는 혼자 숨어 있을 곳이 없었다.


매일 내 초라함을 확인하기보다는, 나답게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나 스스로 만들어주었다. 내가 가장 편안한 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그렇게 매일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남들에게 보이는 외로움보다, 냄새나는 침묵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혼자 그 외로움을 견뎌내기로 결심했다. 이겨낼 수 없을 땐, 견디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혼자 여도 괜찮다.


20년 전에 나처럼, 생존을 위해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 쉼표 속에 의지와 믿음만 있으면 된다. 반드시 이 어둠이 지나 갈 것이라는 것을. 고통의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늘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빛과 어둠은 늘 공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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