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꿈'이라는 직업병
저절로 눈이 감겼다. 따사로운 햇살, 며칠 전부터 점찍어 둔 밀크티, 출근길에 꾸역꾸역 가져온 노트북, 통창이 멋진 카페에서 맞는 오후. 완벽한 조퇴라고 생각했다. 교실에서 카페로 환경을 바꾸면 생각을 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꾸벅 졸다가 결국 카페에서 나왔다. '일단 집에 가서 잠부터 자야겠다.' 곧장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일어나니 어느새 주변은 깜깜했다.
언젠가부터 '교실 꿈'을 꾼다. 대게 이런 식이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 내가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말해도 혼을 내도 말을 안 듣는다. 얘네가 왜 이러지? 나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너희 왜 그래?! 그만해!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쓴다. 그러다 깬다. 이날은 어떤 애가 교실에서 땅콩 껍데기를 수북이 늘어놓고 날리고 놀고 있었다. 웬 땅콩?! (꿈이니까) 어이가 없지만 나는 또 꿈속의 등장인물로 그걸 충실하게 저지하다가 깬다. 더 이상 내게 악몽은 시험 보는 꿈, 누가 쫓아오는 꿈, 내 집에 도둑이 드는 꿈이 아니다.
보통 학교 꿈을 꾸고 나면 안도했다.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어떤 때는 학교에서는 그렇게 애들한테 소리를 못 지르니까, 꿈에서라도 대신 질러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응어리가 풀렸다고 하나.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개학하고 출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지금 졸업까지 갈 길이 구만리인데. 벌써 이런 꿈을 꾼다고? 안도가 아닌 괜한 짜증이 밀려왔다. 나 왜 이렇게까지 학교에서 열심히 사는 거야?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이렇게까지 일터에 에너지를 쓰는 거야? 어차피 내가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러니까 적당히 힘을 쓰고 남겼어야지. 대신 집에서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글도 쓰고 배분해야지. 현명하게. 왜 여전히 미련하게 학교에 몰두하고 있냐고.
엊그제 퇴근길에 마주친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선생님도 그런 꿈을 꾼다고요?
- 응. 나는 애들이 말을 안 들어서 눈물 흘리다 깨. 직업병인가 봐.
- 그니까요. 억울해요. 혼자만 가슴앓이하고. 애들은 아무 생각도 없을 텐데. 힘겨워하다가 다시 애들도 그럴 수 있지, 다시 내가 마음을 다잡아야지. 저혼자 이러는 게 짜증 났어요. 개학한 지도 별로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죠? 자꾸 학기 초랑 비교도 돼요. 재작년 6담임했을 때는 걔네 그래도 11월 전까지는 예뻤거든요. 근데 얘네들은 벌써 안 예뻐요. 근데요 저는요, 차라리 적절할 때 딱 화를 내든가 하면 되는데, 자꾸 꾹꾹 참아요. 그러다가 짜증이 나고, 애들이 미워 보여요.
이렇게 친한 동료 앞에서 그간의 마음을 막 털어놓았다.
-분수의 나눗셈도요, 그냥 역수로 해라 가르쳐도 되는데 왜 저는 꾸역꾸역 그림을 그리고 배움 공책을 확인하면서 원리를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애들이 듣지도 않는데. 그냥 쉽게 넘어가도 되는 걸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 걸, 저는 왜 놓지 못하고 있는 거죠?!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내가 놓지를 못하는 이유는 어떨 때는 교사로서의 나의 신념, 내가 직업인으로서 가진 나만의 철학일 터이고, 때로는 나의 심연의 불안이기도 하다. 이렇다가 망가질까 봐. 애들이 엇나갈까 봐. 교실이 붕괴할까 봐. 내가 상처받을까 봐 하는 불안.
미움받는게 두렵냐고? 어느 땐 두렵지 않다가 어느 때는 몹시 피하고 싶다. 미움보다도 나는 지금 아이들이 교육해서 바르게 크게 하는 게 우선이지라고 힘 있게 내 받아치다가도, 어떨 때는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린다. 큰 파도 속에서 선생님만 믿고 따라오라며 이끌다가도, 작은 풍랑 앞에서 내가 먼저 휘청거리며 꾸벅 넘어진다.
동료들 앞에서 마음을 열고 말할 때도 그렇다. 친한 동료들에게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오늘 일과 이전의 일을 털어놓으면 어느 때는 가벼워지면서 동료들 속에서 위안을 얻고 그들에게 받은 힘으로 툴툴 털고 일어선다. 어느 때는 내가 말한 것들이 혼자 있는 밤에 비수처럼 돌아온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아이가 한 말, 교실의 상황이 막 떠오른다. 돌림노래처럼 귀에서는 어떤 아이의 목소리가 자꾸 맴돈다. 왜 집에까지 와서 떠오르는지 괴롭기도 했고, 경력이 쌓여도 여전한 상황에 괜히 화도 났다.
물론 쌓인 찌꺼기를 털어내는 나만의 방법은 늘어났다.
: 글을 쓰면서 털기, 운동하면서 잊기, 아침에 달려서 출근하기(40분 거리), 맛있는 음식 선물하기, 공연, 영화, 연극 같은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이벤트 하기,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기, 춤추기, 명상 호흡, 요새는 일주일에 한 번 연극 놀이에 가서 모든 걸 잊고 놀기도 한다. 너무 힘들면 연극치료 선생님에게 연락해야지, 라고 생각도 한다. 그런 방법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아주 작아질 때, 내 마음이 이런 숨통을 트일 여유조차 없이 쪼그라질 때면, 왜 나는 이렇게까지 이 일을 지속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안이나 밖에서 나만 왜 열성적인가. 애들은 내 감정에 아무 관심도 없을 텐데. 잠깐 멈추고 꾸중해도 금세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앉아있을 텐데. 내가 열심히 준비한 것을 알아주기는커녕 어서 자기들 놀 궁리만 하고 있는데. 근데 왜 나는 다시 나를 다독여야 하고. 왜 나만 어디 가서 털어내고 충전하고 다시 돌아와 왜 내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 이런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이다.
알아, 나도 살아야 하니까. 당장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다시 반문한다. 왜 그만 못 두는데? 그러면 다시 새어 나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는 생각을 걷잡을 수 없으니 일단은 멈추게 한다. 그러고는 그래 나는 이렇게 능동적으로 움직였으니, 나에게 남는 것들이 많이 있을 터잖아. 내가 어른이잖아. 내 생각과 바람보다 내 마음과 노력을 훨씬 더 많이 알아주는 더 많은 아이들이 있잖아. 이렇게 일단 생각을 돌리려고 한다. 왜? 다시 살아야 하니까. 정신 승리해야 하니까.
며칠 전에는 스스로 심연으로 가라앉는 나를 보면서, 나의 마지막 보류. 연극 선생님께 SOS를 쳐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일단 한 번 나 스스로 여러 가지 방법을 해보기로 했다.
실은 막연하게 예전에 받았던 상처가 반복될까봐 하는 불안이 있었다. 올해 아이들과 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는 아직 모른다. 돌이켜보면 재작년도 힘들 때도 있었지만 좋은 때도 많았다. 그러나 좋은 순간보다는 힘들었던 순간이 세게 남아 있어서 다시 그곳으로 가기 싫어서 괜히 이 아이들에게 내가 고삐를 꽉 쥐고 있었다. 내 탓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간의 경험이 쌓인 건 이런 자각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 일주일 동안에 좋았던 더 많은 시간이 있었고, 지지고 볶았던 안 좋은 짧은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왜 그 짧은 순간들이 나를 끝까지 따라다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은 여전히 찾는 중이다.
이번 여름 방학은 내 나름의 루틴을 만들고 지키려고 했다. 개학하고 일터로 오니 괜히 계획이 깨지는 것 같아 심통도 났던 것 같다. 그 사이 가족과의 일도 있어서 가족에게도 짜증이 났다. 전반적으로 짜증과 심통이 났었다. 명확한 대상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두에게.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내가 잘못했다, 앞으로 이럴 거다, 반성하는 글을 쓰려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랬다고. 나는 그렇게 온화한 선생님도 아니고, 책임감이 넘치는 딸도 아니며, 천사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이렇게 모나고 뾰족한 사람이라고. 이런 심통과 찌질하고 삐뚤빼뚤한 것도 나라고. 그러니까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도 다 괜찮다고. 이 말을 내게 꼭 하고 싶었다.
애들이 바뀌는 건? 그건 삼신할머니든 누가 와도 못 할 것이다. 사고가 안 나는 것?! 모두의 희망 사항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다른 걸 놓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 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정답은 없다. 그 순간의 모든 선택이 그 아이도 나도 그 상황도 다 최선이었다. 간혹 그 선택으로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때 또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이 숨에 그냥 이런 모든 악다구니가 다 빠져나가기를 후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리고 다시 숨을 들이쉬어 본다.
또다시 펼쳐질 내일이 조금은 더 편안하기를.
그렇게 오늘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