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낭만을 찾아서) #옛 제자
얼마 전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담임 첫해에 제자로 만난 재진이다. 10년 전만 해도 휴대폰 번호를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공개했다. 더듬어보면 간혹 주말에 그들로부터 당시 유행했던 캔디팡의 하트 요청이 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번호를 공개하지 않았다. 재진이는 내 번호를 기억하고 연락해오는 유일한 제자다. 5년 전에 수능을 앞두고 학교로 찾아왔고, 대학생이 되고 만났고, 군대에 가기 전에 본 뒤로, 제대하고 오랜만에 다시 얼굴을 보았다. 재진이는 나뿐 아니라 고등학교 은사님도 찾아뵙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이 아이가 특별한 것이다.
재진이가 처음 나를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 녀석은 나와 만났던 해 즐겁게 남아있는 기억을 말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내 첫해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나름으로 뭔가 많이 했다는 걸 알았다. 학급 스티커를 모은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까지 걸어가서 영화를 보여주었다.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대로변도 건너고 사비를 써가면서. 뭣도 몰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번은 격주 토요일에 여자의 날, 남자의 날을 만들어 교실로 아이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런닝맨의 이름표 떼기를 하면서 내내 놀아주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도 재진이에 대한 단편적인 장면이 있다. 매일 사건 사고가 나서 휘청거리던 교실 속에서 늘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던 아이. 그렇게 수업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던 아이. 간혹 친구들과 말장난이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희미하게 미소를 보이던 아이.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인데 참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재진이는 어린 시절 일기장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가끔 다시 읽어보는데 그중에는 내가 써준 댓글도 있다며 재밌다고 말했다. 내가 썼지만 기억나지 않는 나의 멘트들을 재진이가 대신 기억해 주었다. 그때도 나는 아이들의 글쓰기 공책을 읽는 것을, 그리고 댓글을 남기는 걸 좋아했나 보다.
이번에 만났을 때는 재진이도 나도 서로에게 더 편해진 것 같다. 선생과 제자라는 계급장을 떼고, 인생 선배로 재진이의 고민을 듣고 내 이야기를 했다. 아마 이제 재진이가 10년 전의 내 나이와 비슷한 나이가 될 정도로 컸으니 더 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올 초 제대 후, 복학해서 한 학기를 다녔다고 했다. 대학 새내기 때가 코로나 시절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 볼링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근데 볼링보다 술을 마시는 분위기라 이제 나왔어요.
과탑이라면서 내게 자랑도 했다. 재진이가 다니는 학교는 전공과 상관없이 연극 관련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학기에 연기 수업을 신청했는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올곧게 가는 제자에게 일부러 조금의 일탈은 괜찮다고 종용해 보았다.
- 그러면 이번엔 과탑이 어려울 수도 있겠네. 재진아 과탑 놓치기를 목표로 해보는 건 어떠니?
-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선생님.
망설임 없이 받아치는 걸 보니 역시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진이는 수학과다. 공대와는 좀 다른 분위기라고 했다.
- 제 답이 분명 틀렸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 정답 처리를 해주셨어요. 답이 틀려도 과정이 맞았다면서요.
재진이는 이어 앞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내게 털어놓았다. 듣다 보니 재진이는 대학원에 가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선배들은 어때? 복수 전공을 하고 싶은 건 있어? 이것저것 해보면 좋겠어. 후회하지 않게.
- 선생님이 처음이에요. 다들 어차피 대학원 가고 싶은 거면 뭐 하러 시간 낭비하냐고 말해요.
- 하긴 요즘은 효율성의 시대잖아. 근데 돌아가는 게 낭비는 아니더라고. 아쉬움 남기지 말고 해봐.
- 일기장에 댓글에도 선생님이 비슷한 말을 했었어요. 달릴 때보다 걸을 때 보이는 풍경이 더 다채롭지 않으냐고요.
25살의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35살의 내가 보기에는 신규 시절의 나는 마냥 어리기만 한 줄 알았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도 내 고민을 말한다. 소설을 잘 쓰고 싶다고. 근데 글 쓰는 게 돈은 안 되는 것 같다고.
- 소설이라. 뭔가 낭만적인데요.
“우리 둘 다 효율성의 시대에서 낭만을 찾고 있구나. 소설을 쓰고 수학 문제를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야.”
- 지금 만나는 아이들한테도 당장 눈앞의 결과 말고 과정이 중요하다고 자꾸 이야기하는 데 애들한테는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지 뭐. 수학 가르칠 때도 가끔 그냥 역수로 바꿔서 계산하라고 하면 되고, 애들도 그걸 좋아하는데 뭐 이리 나 혼자 원리가 어쩌고 가르치려고 하는지 말이야. 드라마 영상으로 스토리텔링 식으로 수업하시는 분도 많거든. 애들도 그걸 좋아하고. 나는 그게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 근데 이거 내 똥고집 같기도 해.
- 선생님이든 교수님이든 모두 그런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신념과 학생들이 원하는 것의 간극이요.
학교 얘기를 꺼내다 보니 문득 나부터 아이들 유행에 관심이 없었다는 걸 느꼈다. 실은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도, 웹툰도, 유행한다는 밈도. 요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애들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나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교사란 직업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좋은 동료들이 많은 건 복인 것 같아. 그런데 아이들도 매해 달라지고 현장 분위기도 바뀌고, 무슨 직업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직업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 해가 제일 힘들었어.”
자연스럽게 첫해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재진이에게 들춰 보인 건 처음이었다.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어. 처음이니까 그런가 보다 그래서 버텼던 것 같아. 그리고 잘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했어. 지금은 미안한 마음보다는 그냥 나쁜 기억이 남아있지 않기를. 흘러갔기를, 잊었기를, 크게 남지 않기를, 잘 컸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진이는 내게 당시 그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선생님이었다고. 미안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더 이상 그 기억을 울지 않고 감정의 널뛰기 없이 담담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재진이에게 말했다.
“연극할 때는 마냥 즐거워. 그리고 선생님이 제법 연기를 잘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연극은 놀러 가는 거야. 근데 글은 아니야. 잘 쓰고 싶어. 힘주고 욕심도 부려. 그래서 때론 힘들기도 해. 그런데도 잘 쓰고 싶어. 희열이 있어. 내가 생각한 걸 글로 딱 정확히 포착해서 그려냈을 때 희열 말이야. 그리고 소설은 말이야. 원래 내가 그 이야기를 생각한 게 아니었거든. 가려던 게 있었어. 그런데 쓰다가 의외의 문장을 만날 때가 있어. 그때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그게 즐거워.
결국 어떤 꼴이 되었든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15년 전의 대학생 때의 나는 진실한 글을 쓰고 싶다고 적었어. 그 진실이 뭔지는 알아가는 중이야. 좋은 이야기, 누군가가 말했던 최고의 글. 나도 그걸 원해.”
술을 먹지 않았는데 이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갔다.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가 될 때가 있다. 명확해지고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여전히 교직은 어렵지만 재진이는 내게 자랑거리다. 재진이가 앞으로 갈 길이 어느 방향이든 나는 늘 손 흔들어주며 응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조금 먼저 내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