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고백하자면, 원해서 온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학교에 정을 붙이고 잘해보려고 애썼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덕분에 나를 많이 발견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성장해가고 있다.
처음부터 뭔가 수월하게 척척 학급운영을 하는 동료들이 보였다. 나는 아니었다. 꽤 오래 교직에 맞나를 고민했다. 임고 본 것이 아깝고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서 그만두지 못하고 첫해를 버텼다. 그리고 어쨌든 이 직업에서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연수를 들으면서 노~오력을 했다. 에니어그램 연수에서 만났던 같은 유형 4번 선생님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4번은 진짜 교사하기 힘든 유형이지 않아요?!”
카리스마 있는 8번,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2번, 성취지향적인 3번, 조직에 충실하다는 6번 등등 모두 그럭저럭 교직에 어느 정도는 맞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상처도 잘 받고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면도 있고, 계획적이지도 외향적이지도 않은 INFP. 에니어그램 4번(예술가)인 나는 정말 교사가 적성이 아닌 것 같았다. ‘애들한테도 영향을 주잖아. 적성에 맞지 않는데 붙잡고 있는 게 미련한 거 아닌가. 나도 그렇지만 애들한테도 미안한 일 아닐까?’
방황했던 나에게 친한 언니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야, 다른 유형들도 어려움이 있어. 모두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는 거야. 다 고민해. 그리고 이 직업이 적성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교사가 되길 원했던 언니였다. 그리고 학급경영, 업무도 척척하고 아이들과 잘 지내는 언니였다. 그 언니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아이들을 보내면 무엇을 할 기운이 없다. 집에 오면 바로 자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누워있는다. 마음으로는 움직여야지 해도 쉽지가 않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힘이 빠진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못 하지, 왜 이리 약하지, 애들도 학교도 생각이 안 났으면 좋겠다.’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교실에서 교사는 외롭다. 그런 와중에 교실에서 받은 상처를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왜 그때 그 방법을 썼을까… 내가 안 그랬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럴까? 우리 반은 왜 이럴까?’ 이렇게 나를 호되게 몰아세웠다. 돌아보니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자책’이었다.
“남 탓 안 하고요. 치사하게 안 살고, 그 와중에 남보다 더 착하고, 더 착실하게 그렇게 살아내는 거. 그거 다들 우러러보고 박수쳐 줘야 할 거 아니냐고요? 남들 같았으면요, 진작에 나자빠졌어요. 그런데 누가 너를 욕해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대사
이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 조금 후련했다. 그리고 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편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나에게 상처 주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책을 했던 과거의 나는 그만큼 책임감이 있었다고 기억하려 한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무기력한 나를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몸에서 원하는 대로 쉬어도 된다.
인정받고 싶었다. 학창 시절 그래도 나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고, 어디 가면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현장에서도 그게 당연할 거라 생각했고,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장은 수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하는 돌발상황들이 끝없이 밀려왔다. 기억해야 할 내용도 많고, 신경 써야 할 관계도 많았다.
아직도 선배들의 그 노련함은 못 따라잡는다. (당연하다!) 그리고 어렴풋 학급 경영과 분위기의 차이는 디테일에서 시작된다는 걸 느낀다. 과제를 걷을 때 종이가 향하는 면, 신발장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것, 급식판을 깨끗하게 천천히 놓는 것 같은 엄청 사소하지만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 하나부터 끈질기게 늘어져 차근차근 지도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시는구나가 이제 조금 보인다. 하지만 그 노련함을 가지고 경쟁? 한다면 당연히 지는 싸움이다. 나는 이걸 지금 내 한계를 인정한 거라고 좀 멋지게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잘한다는 말도 참 모호하다. 사고가 안 나면 잘하는 것인가? 수업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어느 정도 객관적 기준이 있겠지. 보면 멋진 선배, 닮고 싶은 선배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배도 있으니까. 그런데 멋진 선배 교실에도 어려움이 있다. 안타깝게도 때로는 그 선배들도 안 맞는 학생, 학부모, 동료 등을 만나서 좌절하기도 한다. 그리고 닮고 싶지 않았던 선배들도 잘 보면 배울 점들이 있다. 그리고 이건 내 기준으로 닮고 싶은지, 아닌 지 나눈 것뿐이다. 내 안에서 내가 가지지 않은 것들을 부러워하고 '비교'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는 내가 가진 것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근데 누가 부러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아이들과 부대끼는 이 교실에서는 난 충분히 애쓰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 어려웠다면 내년에 좀 더 나아지면 된다.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다. 꼭 지금 꽃 피우지 않아도, 꼭 여기서 피우지 않아도 괜찮다. 나에게는 나만의 장점이 있다고 믿으려고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그리고 혹 누군가 비교의 잣대로 들이댄다면 속으로 ‘x발 네가 해봐’라고 말하기로 했다.
우리 반이 무슨 사고라도 날까 봐 두려웠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불안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증명까지는 못 하더라도 민폐, 구멍이 되는 건 싫었다. 우리 교실이 1년 동안 사고가 나지 않기를, 무탈하기를 바랐다. 통제에 집착하다 보니 어느새 감시자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다.
연차가 쌓일수록 내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내 능력 밖에,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통제할 수 있다는 마음, 교사 개인이 바꿀 수 있다는 마음도 어찌 보면 오만한 것 같다.
우리의 일터는 서로 다른 아이들이 오랜 시간을 부대끼는 곳이다.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터진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내 탓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만의 문제, 나만이 기여한 것이 아니다. 아이, 학부모, 교사, 동료, 관리자 등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황이 그런 거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인 나는? 나는 무엇을 하면 되는가?
내가 모두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자, 교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좀 덜 감정적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여러 교육을 하면서 예방하려고 애쓰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대응하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미리 불안해하며 내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민폐를 안 끼치고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민폐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피해 안 주려는 마음은 예뻤다고 간직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젠 민폐를 끼치면 안 돼’ 하며 나를 옭아매지 않으려고 한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우리는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생존기를 지나오면서 불안함은 많이 내려갔고, 교사로서의 삶도 지낼만하였다. 그러나 즐겁지는 않았다. 노잼시기가 찾아왔다. 아이패드 드로잉도 배워보고, 주말에는 근교로 여행도 다녀보고, 소개팅도 하며 학교 밖에서 삶의 재미를 찾으러 다녔다. 돌아보면 내가 너무 빅재미를 꿈꾸고 찾았던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좋아하는 드라마를 발견해서 일상에서는 덕질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데 교실에서는? 일상에서 재미를 찾은 건 좋은데, 교실에서 나는 어떤 즐거움을 느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내가 처음 교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건 ‘수업’이었다. 그건 마치 내가 설계하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현장에 오면서 점점 수업에 회의가 들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완벽한 수업은 없어.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 준비하자 이런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적고 나니 내가 아이들의 반응, 결과에 더 민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래서 어느 순간 수업을 준비하는 데 전처럼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찾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직업에서 언제 즐거움을 느끼는지 말이다.
“하나만 말해야 해?”
교사라는 직업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대답에서 먼저 놀랐다. 아, 언니는 정말 여러 즐거움이 있구나. 언니가 말해준 교실 안에서 느낀 즐거움을 나누려고 한다.
“우선 내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처음 사람이란 게 좋아. 특별하잖아.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무언가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처음 배운 거잖아. 내가 그 사람이라는 게 좋아. 그리고 사람의 성장에 관여하는 일이니까? 내가 지대한 영향은 못 미치지만 한 순간에 내가 영향을 주니까 나름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줘.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좋아. 많은 애들은 내가 주는 만큼 나에게도 그 사랑받는 기분을 돌려주는 것 같아. 그래서 난 애들하고 있을 때 가장 나 같기도 하고 좋아.”
언니는 가르치는 행위 자체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언니의 답변을 들으면서 이 직업이 그래도 참 값진 일이구나를 느꼈다.
나는 여전히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교실을 꿈꾸지만 잘 안 될 때가 더 많다. 오늘은 좀 더 격려하는 말을 많이 해야지 하지만 6교시에 참았던 화가 빵 터져서 감정적으로 대하고 후회도 한다. 그래도 내가 만드는 <자책>, <비교>, <통제>의 함정에 빠질 때면 알아차리고 벗어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 직업의 즐거움을 찾는 중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사소한 순간들도 괜찮다. 그러다 보면 선물처럼 빅재미도 오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