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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Mar 30. 2023

약점의 반전

1. 어떻게 바라볼까

1. 학부모상담


초등학교는 한 해 두 번 공식적인 학부모 상담기간이 있다(이것도 올해부터 변화하는 중이다). 1학기 상담은 담임교사가 아이들과 지낸 시간이 얼마 없다. 따라서 교사는 듣는 자리다. 학부모가 아이에 대한 집에서의 일상, 지난 학년에서의 학교생활 등의 정보를 주로 말한다. 2학기는 그보다 교사가 지금껏 생활하면서 관찰했던 것들을 전달한다. 그렇게 두 번의 상담을 통해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학교와 가정에서 협력해서 지도할 부분을 이야기한다. 


작년 10월 중순에 2학기 상담을 했다. 아직 코로나 여파가 다 가시지 않아 전화상담으로 진행했다.


신규 때는 교실내선으로 전화가 오는 소리만 들어도 긴장이 되었다.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고, 보통 전화가 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걸 경험으로 익혔으니까. 소리만 울려도 몸이 굳었다. 학부모 상담을 하기 전에는 미리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물어볼 것들을 대본으로 적기도 했다. 유명한 선생님의 책과 유튜브를 보면서 그들이 하는 멘트를 적고 외웠다. 


연차가 쌓이긴 쌓였나보다. 멘트 하나하나를 적었던 대본은 점점 가이드라인이 되고, 질문목록이 되고, 어느 순간은 없어졌다. 20분의 주어진 시간동안 나와 학부모의 목소리로 꽉꽉 채워졌다. 하하하, 호호호. 능청스럽게 웃는 것도 늘었다. 좋은 피드백도 많이 주셔서 감사했다.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은지 오래지만, 그래도 칭찬 건네주면 힘도 나고 기분 좋다.

    

다만 상담 후에 내 목이 쉬었다. 칭찬에 정신없이 춤추다 힘을 주었다. 학습, 교우관계, 1:1로 학생들과 따로 상담하면서 나눈 이야기 등 말하고 싶은 내용이 많았다. 의욕은 앞서는데 요령은 없었다. 상담 이후 목감기를 달고 쎄게 아파보니, 아무리 2학기 상담이라고 해도 내 말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학부모 말을 더 들어야겠구나 하고. 아프면 나도 손해고, 크게 보면 애들한테도 좋지 않을테니까. 이후 학생들에게 "부모님과 상담해서 목쉰거 아내야. 너희가 꼭 전해줘야 해."라고 강한 부정을 하면서 나의 노고를 혼자 생색내기도 했다. 



2. 교사에게 '착하다'는 말


이번 상담에서도 학부모의 입을 통해 '착하다'는 말을 들었다.


교사가 되고난 후 나는 '착하다'는 말에 더 민감해졌다. 학생과 학부모 입에서 착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이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착하다'는 '만만하다'의 의미였다. '화를 안낸다'는 말은 '화를 못 내내까 아이들을 못 잡는다'로 들렸다. 동료에게서 들었던 '자긴 너무 여리여리해'도 거슬렸다. 마치 내가 힘이 없어보인다는 말 같았다. 

전국교사연극모임 연수 중에  만든 소책자. 왼쪽이 나를 힘들게 했던 말(자신에게 했던 말도 포함)을 적었던 칸이다. 

그 무렵 방학 때 참여했던 <전국교사연극모임> 연수에서 만든 종이책이다. 왼쪽 주황색 매직으로 쓴 내용은 당시 나를 힘들게 했던 말이라는 주제를 듣고 적었다. '착하다', '여리여리하다'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린 것처럼 그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저 문장들은 실은 나 자신에게 내가 많이 했던 말이었다.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했다.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무의식 중에 저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이 문장들은 당시의 나의 발목을 잠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걸 주저하게 했다. 누군가에게 듣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결국 나를 가장 공격했던 건 학생도, 학부모도, 동료도 아닌 나였다. 내가 나를 모자라게 보면서 스스로 상처를 냈다.  


태윤(가명)어머니 : 선생님이 6학년 선생님들 중에서 제일 착하시데요. 화를 안 내신데요. 태윤이가 집에 와서 선생님 도와드리고 왔다고 말하기도 해요.

나 : 어머, 태윤이가 저를 그렇게 봐주었다니 참 고맙네요. 저도 태윤이 덕분에 힘이 날 때가 많답니다. 호호호. 올해 감사하게도 반 애들이 참 괜찮아요.

 

더이상 '착하다'는 말에 기분 상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본 느낌을 표현한 것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무섭지 않다란 뜻도 있겠지만, '편하고 좋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카리스마 있고 잘 잡아주는 선생님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에서 6년 동안 다양한 선생님을 만나는 게 아닐까? 나는 차분하고 섬세한 선생님은 아니다. 개그욕심도 있고 잘 잊어버리기도 하고, 수업도 많이 연구한다. 화를 낼 때도 있고 친절할 때도 있다. 아님 말고. 이런 선생님, 저런 선생님 있는 거니까. 


대신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이라도 내 기분이 상했다면 경계를 세운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라고.


담임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말을 많이 듣는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학생, 학부모, 동료, 관리자 등 학교에서 관계맺는 여러 사람의 말들이다. 그리고 대게 칭찬이든 비판이든 평가하는 말이다. 무심코 던진 작은 말들도 쌓이다보면 힘이 세진다. 마치 커다란 파도처럼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씹을 거리, 돈 못 버는 연예인, 학교 근처 브런치 카페의 이야깃거리다 등의 이런 자조적인 내부의 우스개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런 평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순 없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나를 평가하는 외부의 시선이 버거웠고, 나역시도 나를 포함해서 학생들과 주위를 평가했다. 그러나 매순간 평가의 눈을 하고 지내는 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다. 오는 파도를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교사로의 나도, 내 자신도, 좀 더 너그럽게 자연스럽게 내가 먼저 바라보고 싶다. 



3. 약점의 반전


작년 학기 말에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이 나에게 준 편지 중 일부를 가져왔다. 아이가 적어 준 ‘작고 연약하시지만 부드럽고 든든하신 00쌤이라고 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여리여리해 보인다는 말. 

그 말 덕분에 뒷문장이 반전처럼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작고 연약하다를 인정하기로 했다. 

작고 연약해서, 부드럽고 든든한 내 모습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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