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4.) 일곱 번째 과제 후
글쓰기 강좌의 마지막 과제는 "상징이 들어간 수필"이었다. 상징? 만만치 않았다. 강의를 해주신 교수님도 상징(메타포)에 관해서는 한 번의 강의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맛보기라고 해야 하나? 덕분에 과제를 하면서 상징과 비유에 대해 좀 더 고민할 수 있었다.
애정하는 글 중의 하나인 나의 일곱 번째 과제 - <일일연속극>
https://brunch.co.kr/@writer-kang/23
7번의 글쓰기 여행을 통해서 다시 할머니로 돌아왔다. 나의 큰 주제는 외할머니였다. 오랫동안 미워했고, 그래서 괴로웠고, 마지막까지도 붙잡았던 나의 할머니.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도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어린 내가 미움과 죄책감에 괴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더 안아주고 싶다.
할머니와 나의 인연도, 내게 벌어졌던 사고도, 할머니를 보내드린 마지막도 연결되어 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직업도 (할머니도 교사였다.), 죄책감이라는 감정도 그 모든 것도 말이다. 물론 할머니라는 단어로 나란 사람의 모든 것들을 말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그녀와 나는 우리가 살았던 시간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나 역시 내 삶을 지나왔다.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이제는 억울하다는 감정보다 감사한 시간으로 기억하려 한다.
엄마를 선, 할머니를 악으로 내가 편을 갈랐던 것처럼, 건강에도 선, 악을 나누니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건강해야만 무조건적인 선, 건강하지 않으면 악.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가치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의무감으로 대하면, 그리고 그런 마음이 과하면, 내가 힘들어졌다. 잠이 오지 않아 불안할 때도 잠을 자야지하며 힘을 꽉 주길 보다는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봐주고 싶다. 왜 내가 교실 속의 학생들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에, 혐오하는 것에 대해 특히 개입하기를 어려워했는지, 그 마음에 이입하여 민감했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그 안에는 내가 할머니를 미워했던 마음도 있었다.
첫 과제에서 나의 사고를 살짝 다루었고, 이렇게 할머니로 마무리해서 좋았다. 몇 년 전에 동화를 습작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처음 픽션으로 나의 할머니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글보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조금 감정을 내려놓고 할머니를 마주했다. 그래서 좋았다. 이렇게 오래 돌아서 한 발짝 올라갔다.
며칠 후, 서울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에게 그동안에 썼던 글을 보여주었다. 독자로서 엄마의 조언이 고마웠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에게 운전이 도저히 어렵고 안 되는 것처럼, 외할머니에겐 혼자 산다는 게 정말 안 되는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엄마 역시 할머니를 많이 놓아준 것 같았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즐겁고 때론 괴롭기도 했다. 그래도 7번의 과제를 채우며 찬찬히 잘 걸어왔다. 마지막 글에서는 내 주제였던 '외할머니'를 좀 더 감정과 힘을 빼고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서 자극도 받았다. 그리고 나에겐 할머니 말고도 또 다른 나만의 주제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마주칠 길에는 또 무엇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