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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Aug 13. 2023

인생은 알 수가 없어서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늘 그래왔듯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에 놓았던 핸드폰을 집었다. 아이폰 하단 바를 올리려고 손가락을 갖다 댄 순간부터 그날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아무리 만져봐도 잠금 화면만 비출 뿐이었다. 노트북을 켜고 검색창에 '아이폰 터치 고장'을 쳤다. 설명대로 볼륨 버튼을 연이어 살짝 누른 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별일 아니겠지. 이전에 어떤 기미도 없었잖아. 그러나 사과 마크가 나올 때까지 핸드폰을 껐다 켜길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날 애플 서비스센터를 예약했다.

 

집을 나서기 전, 센터가 강남역 몇 번 출구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땀에 젖은 옷이 몸에 쩍쩍 달라붙던 날이었다. 강남 대로 빌딩들 속에 커다란 통창 매장이 보였다. 핸드폰이 먹통이라 걱정했던 것과 달리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가 이어졌고 빵빵한 에어컨 덕에 땀도 금방 말랐다. 매장 안의 산뜻한 주황빛 조명처럼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았다.

 

직원은 화면 패드를 제거하고 이것저것을 만졌다. 내게 부품을 교체하고 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케어 서비스는 이미 종료가 되어 비용은 40만 원 정도가 나온다며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예상외의 금액이었다. 당황한 나에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새 아이폰 기종은 어떠냐며 여러 모델들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러운 지출과 선택지들에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는 수리를 맡기기로 했다. 3개월 할부, 418,350원. 현실감이 없는 숫자들만 내 통장을 스쳐갔다.

 

요 근래 나는 '아낄 수 있는 곳에 돈을 아끼자!' 마인드로 살고 있었다. 카페에 가는 대신 도서관을 찾았고, 간편한 새벽 배송 대신 큰길 건너 시장에서 장을 봤다. 나아가 지인을 만날 때면 가계부를 써보니 좋다며 오지랖을 부렸다. 세척당근보다 저렴한 흙당근을 채칼로 손질하며 오늘도 한 푼, 두 푼 아꼈다며 뿌듯해했다. 내가 최근에 40만 원 언저리를 한 번에 질러본 적이 있나? 이렇게 한순간에 훅 사라지네.

 

그러고 보니 한 달 전에도 그랬다. 당시 나는 채소 쪄 먹기 전도사였다. "샐러드는 안 맞는데, 익힌 당근이랑 호박에 소금, 후추로만 간을 하니까 맛있더라. 찌는 건 볶는 것과 달리 내가 계속 확인할 필요도 없어. 속도 편하고 좋다니까. 나 왠지 피부도 깨끗해진 거 같지 않니?" 라며 사람들을 만나면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다 몇 주 후에 장염을 심하게 앓았다. 원하지 않던 단식을 해야 했고, 일주일 내내 죽만 먹었다. 한창 건강식단을 한다며 자부심이 차오르던 무렵이었다.


채소 찜 사진 :)


그러니까 역시 또 인생은 참~알 수가 없다. 매일매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데도, 아니 오히려 뭘 좀 해보겠다고 대비하는 중에, 어디선가 잔 펀치가 훅훅 들어온다.

 

예전의 내가 이런 일을 겼었다면, 실망하거나, 에잇 세상은 왜! 하면서 소리치며, 해오던 습관을 곧장 포기했을까? 역시나 인생은 알 수가 없다고 도리도리 고개를 젓다가, 그래서 참 웃기다. 재밌네.라고 말이 튀어나오는 지금의 내가 새삼스럽다. 물론 크게 실망할 만큼, 포기할 만큼, 거세게 항의할 만큼의 큰 타격이 아니어서 웃음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격의 규모에 상관없이 '인생은 알 수 없으니 -> 재밌구먼'이라고 화살표가 나아간 내가 기특했다.

 

뭐 모든 일에 배울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약간 강박인 것 같지만, 다시금 내가 할 수 없는 저 너머의 것들에 겸허해진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인생이니, 막 먹고 막 쓰고 살고 싶지는 않다. 나란 인간은 스스로 잘 챙겨 먹는다고 느낄 때, 뭔가 착실하게 하고 있는 중이란 생각이 들 때, 뿌듯한 사람인 거 같다. 다만 그렇다고 계획대로 혹은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 본다.

 

P.S. 어쨌든, 그동안 아껴 썼으니 손 안 벌린 게 아닌가? 내가 해결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며 정신승리를 하는 중이다. 그날 이후 내 아이폰의 수명이 더 길어지길 바라며 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 글 쓰며 생각났던, '좋아서 하는 밴드-인생은 알 수가 없어' 노래.


핫초코를 찾아 떠난 커피숍에서

마주친 카페라테

어떤 게 더 좋을까 고민고민하며

한걸음 다가간다

주문을 하고 카페라테를 마신다

한 모금 마신 후에 불현듯 떠오르는 핫초코

핫초코 초코 핫초코

주문할 걸 너무 섣부른 결정이었나

핫초코 초코 핫초코

집에 가기 전에 잊지 말고 Take out

가벼운 걸음으로 집에 돌아간다

기분이 너무 좋아

네게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따뜻하게 대우자

주방에 가서 전자레인지를 찾는다

눈앞에 들어온 건 엄마가 사 온 듯한 핫초코

카페라테로 사 올걸

왜 하필 오늘 우리 엄만 날 생각했나

인생은 알 수가 없어

내일은 이런 일 없을 거야 Tak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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