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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Aug 11. 2023

내 안의 벽에 균열을 내는 과정

#트레바리 #독서 #등산

몇 해전에도 트레바리 독서모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그것도 내 생각엔 꽤 큰돈), 독후감을 제출해야 참여할 수 있다는 모임.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서랍을 굳게 닫듯 기억 저편으로 밀어 넣었다. 

올해 문득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왜 하필 올해라고 묻는다면, 휴직의 힘이라고 답해야겠다. 어찌 보면 성가실 수 있는 과정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들도 궁금했다. 나에겐 망설이던 문턱인데 누군가는 사뿐히 넘었다는 걸 테니까. 그래서 가입 버튼을 누르고 입금했다. 내가 신청한 모임은 '체험독서-산'이다. 말 그대로 책을 읽고, 때때로 등산도 한다고 했다.  


첫 도서였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3. 서울 편>을 읽은 후, 독후감


안국역 근처라던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큰 사각테이블에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산'이라는 부제 때문인지 대부분 등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산 이름이 등장했고, 누군가 호응하면서 질문이 이어졌다.    


내 차례였다. 나도 이름, 직장, MBTI를 순서대로 말했다. 그리고 왜 참여하게 되었는지 입을 뗐다. 나 역시 '산'이라는 부제에 끌렸다. 다만 찾는 목적이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는 '무리하지 말자'가 꽤 오랫동안 모토였다. 어릴 때는 아빠 손을 붙잡고 설악산 울산바위도 재잘거리며 올라갔던 것 같은데... 어린 나를 보고 다른 등산객들이 칭찬해 주던 걸 꽤 오래 자랑스러워한 것 같은데... 크면서 굳이 내 발로 산을 찾아간 적은 없었다. 직장생활 이후에 등산이라고 본격적으로 이름 붙일만한 건, 몇 해전에 다녀온 인왕산이다. 분명 블로그에서 초보자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이라고 했다. 도중에 밧줄을 붙잡고 바위를 올라가는 구간이 있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산 아래가 보이는 졀벽이었다. 정상을 찍었다는 뿌듯함보다 아찔함에 후들후들 떨리던 내 다리가 더 기억에 남았다. 그러면 관악산, 북한산은 대체 어떻다는 거지? 역시 무리하면 안 되겠다. 내 모토를 한 번 더 확인받은 날이었다.  

그러다 올해 집 근처 산(모임원들 앞에 산이라고 뽐내기 민망할 수 있지만 그래도 명백히 우장'산'이다.)에서 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맨발로 걸으며 느껴진 촉촉한 흙과 울퉁불퉁한 자갈의 감촉도, 이후 발을 씻으며 발바닥 신경 하나하나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도 좋았다. 그렇게 산에 관심이 생겼다. 


나는 설악산부터 이어지는 장황한 설명대신, 맨발 걷기가 좋았어요.라고 한 마디를 했다. 

"오, 산에 가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하시던데, 궁금해요." 누군가 호응했고,

"네, 아무래도 연령대가 그렇죠?!ㅎㅎ근데 해보니 좋더라고요."라고 답했다.

  

차례로 말은 이어졌지만 침묵도 잦았다. 첫 만남이라 다들 조금 어색한 것 같았다. 그러나 살짝 긴장된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도 새로웠다. 산에 관한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은 다르지만 앞으로 남은 세 번의 만남도 궁금해졌다.


지금의 나는 무언가에 막 엄청난 기대나 감흥을 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니까 막 '우와, 우와' 이랬던 호들갑이 좀 줄었다고 하나. 이런 변화가 꼭 좋은 것도 나쁜 것만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들, 지레 벽을 쳤던 것들을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내 안의 벽에 균열을 내는 과정을 즐겨보려는 내가 좋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undoing에 관한 글귀. 


#균열 #시절일기 #나의 올바른 사용법

얼마나 나이가 들었든, 육체적으로 뭔가를 새로 배울 때는 반드시 'undoing'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건 지금까지 제대로 몸을 사용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잘못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만은 옳게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걸 인정해야만 제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목표 지향적으로 행동하는 덕분에 늘 목표를 이루지 못해 남을 탓하는 삶에서 벗어나, 과정을 몰두하며 매일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을 때는 어떨까? 이때의 'undoing'이란 어떤 것일까? 그건 아마도 습관적으로 안주하고 있던 익숙한 생각, 자신은 옳게 알고 있다는 그 느낌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 일을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사를 판단할 때는 어떨까? 그때의 'undoing'이란?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에서 시작된 질문은 마음의 문제로 뻗어나간다. 결국 '나'를 제대로 사용하는 일은 이런 물음에 대답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다.  <김연수- 시절일기 (나의 올바른 사용법 중에)>


p.s. 첫 모임이 끝나자 파트너가 뒤풀이를 제안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나는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더 가까워지려면 뒤풀이를 가야 할 것 같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좀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 또 벽을 쳐 본다ㅎㅎ) 대신 낮에 번개로 등산을 갈 때는 참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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