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는 복장이랑 장비도 갖춰야 하잖아. 돈도 많이 들어. 유행한다고 SNS에 사진 찍는 것도 별로. 더구나 한 손 운동이라 몸에 무리도 갈 거야.”
평소 친한 동생 S의 말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나였다. 그런데 테니스를 시작해 보는 게 어떠냐는 S의 제안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답했다. 왜 내가 테니스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조목조목 이유를 대가면서.
집에 와서 가만 돌아보니 뭐 그리 부정할 일인가 싶었다. 더욱이 나는 테니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중학생일 때 만화책 테니스의 왕자에 푹 빠져본 적은 있다). 일말의 틈도 없이 반박했던 말들은 실은 어디서 듣고 보았던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었다. 잘 알지도 않으면서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었다. 테니스가 그동안 내 생활 반경에 없던 새로운 대상인 건 맞다. 아무리 불쑥 내 코트 안으로 넘어왔다지만 시작도 해보기 전에 몸서리를 치며 싫어할 일인가 싶었다.
때마침 ‘직장인을 위한 무료 테니스 강좌’ 공고문을 보았다. ‘뭐지, 이 기막힌 타이밍은?’ 평소라면 지나쳤을 글이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6월 한 달 동안 매주 금요일 저녁 5번의 레슨. 다섯 번 정도는 경험 삼아 괜찮을 것 같았다. 테니스보다 무료라는 말에 혹한 것도 맞다. 전화를 걸어 재차 확인했다. 장비나 복장이 없어도 괜찮고, 생초보도 환영한다고 했다. 구글폼에 개인정보를 입력하고서도 테니스 엘보우를 검색하며 망설였다. 그러다 결국, 신청버튼을 눌렀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라는 계시를 받아들인 거 마냥.
어렸을 때 나는 확실한 주관이 있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나도 그들처럼 자기만의 스타일과 철학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선호와 비선호의 경계가 분명해진 것 같다. 확고하게 자리 잡은 나만의 바운더리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기준이 분명해질수록 내 안에 편견과 선입견도 더불어 굳어지는 것 같다. 내가 겪어보기도 전에 미리 단정해버리는 생각들. 그 속엔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는 일종의 무시와 편 가르기가 있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 코어운동을 했는데, 의도치 않은 승모근도 함께 단단해졌다고나 할까?!
5월 말경, 테니스 대기자이니 자리가 나면 연락을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들 불금이라 바쁠 텐데 금방 연락이 오겠다 싶었다. 대기번호를 물으러 전화해 보니 40번대라고 했다. ‘아... 그럼 안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경쟁률은 치열했다. 내가 당연히 될 거라는 것도 나의 착각이자 편견이었다. 세상에 테니스를 하고픈 사람은 많았다.
그래도 신청버튼 클릭만으로도 약간 뿌듯했달까. 다가올 6월을 기다리면서 테니스가 실제로 어떨지 기대도 되었다. 깨부수는 격파까지는 아니어도 테니스에 가졌던 내 선입견에 실금이 살짝 그어진 것 같았다. 꼭 힘 vs힘으로 부숴버려야 없애는 건 아닐 테니, 자꾸 두드려보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조금은 말랑말랑해지지 않을까?
내가 관심 있던 것들, 그러다 굳어져 내 취향이라고 불리는 것들, 그리고 예전엔 좋아했지만 식은 것들, 그런 길목길목을 거치면서 나를 만났다. 그러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이 길은 맞지 않다고 재단하기보다 일단 해보려는 태도는 중요한 것 같다. 꼭 모든 걸 다 하지 않더라도 미리 짐작하고 평가하는 건 멈추려 한다. 세상에 쳐 놓은 나의 단단한 벽 곳곳에 이해의 틈을 남겨두고 싶다. 그러고 보면 경계가 꼭 벽일 필요는 없다. 테니스 네트처럼 구멍 송송 난 그물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7월에 한라산 등반을 하려는데 같이 갈래?”
내 코트 안으로 또 불쑥 새로운 도전장이 날아왔다. J언니에게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는 호기심과 ‘무리하는 거 아닌가? 위험한 거 아닌가?’하는 경계도 다시 올라왔다. 생각해 보고 가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J언니의 말을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새로운 도전장을 곱씹을수록 자꾸만 궁금한 나 쪽으로 조금씩 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