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마주침, 계획 없던 약속, 길었던 여운.
지난주 목요일-금요일 전등사로 처음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브런치북도 완성했겠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책도 읽고 절밥도 맛있게 먹고 혼자 쉬다와야지란 생각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곳에서 만난 '삼삐'라는 외국인과 친해졌다. 우리는 다음 날 새벽 산책을 하며 함께 해돋이를 구경했다. 전등사를 떠나기 전에는 기념품 가게에서 서로 팔찌를 교환하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녀는 일요일에 네덜란드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일 서울에 가는데,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내일(토요일)은 집회 봉사활동도 신청했고, 다음 날인 일요일엔 대구를 갈 일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스케줄이 빼곡하여 집회가 끝난 토요일 오후는 무조건 집에서 쉬어야지 생각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만나면 뭐 하고 싶어? 떡볶이 좋아해??"
"떡볶이 좋아. 실은 길거리 음식 먹어보고 싶었어. 노래방도 가보고 싶어!"
(뭐... 노래방?! 코로나 이후로 노래방 간 적이 없는데... 동공지진이 일어났지만 난 알겠다고 답했다.)
삼삐의 게스트하우스는 혜화역 근처였다. 10년 전 내가 살았던 집 근처라는 것도 신기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친구 몇몇에게 외국인과 함께 갈 관광코스와 음식점들을 물었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만나니, 광장시장으로 안내하고 싶었다. (가려던 음식점대신 즉흥적으로) 나도 익숙지 않은 곳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누군가를 이끌고 갔다. 완벽한 계획도 철저한 조사도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고맙게도 시장 입구에서 한 여성분이 우리를 보고 호기심을 느끼셨는지,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덕분에 유명하다는 빈대떡도, 누드김밥도 먹었다. 새로운 풍경을 볼 때마다 삼삐는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배를 채우고 나서는 한껏 차오른 보름달을 보며 청계천을 걸었다. 그녀도 Full Moon 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다음 코스는 혜화역 근처 K-노래방이었다. 적당히 삼삐의 노래를 듣고 호응만 하고 오려고 했다. 첫 곡으로 삼삐는 ‘심수봉-백만 송이 장미’를 선곡했다. 핸드폰으로 한국어가사가 소리 나는 대로 쓰여있는 문서를 찾은 후에 더듬더듬 노래를 불렀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후렴구를 부르는 삼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뭐가 있을까 찾으려고 나는 그녀에게 westlife, Backstreet Boys, N-sync를 아냐고 물었다. 중, 고등학교시절 들었던 팝송을 여기서 써먹네 싶었다. 우리는 westlife-my love를 함께 부르며 깔깔대며 웃었다. 아마 한국인인 내 친구들과 왔다면 절대 부르지 않았을 노래들이었다. 노래방에서 나왔을 무렵, 삼삐는 나에게 몇 살인지 물었다. 내가 선택한 가수와 노래가 그녀에게 old-pop이어서 놀랐나 보다. 그제야 나는 내 나이를 밝혔다.
우리는 10살 차이다.
그녀는 다음 날이면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11월에는 대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곧 결혼을 한다. 네덜란드에서 혼인신고를, 결혼식은 그녀의 고향인 인도에서 한다고 했다.
실은 나는 '삼삐'의 모든 말들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해 보려 더 귀 기울였다. 그리고 (네이버 사전을 찾아가며) 내 이야기를 더듬더듬 전달하려고 애썼다. 청계천을 따라 걷고, 다시 혜화역 근처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역시 편하게 내 속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차피 나도 너도 이 모든 언어들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짧은 만남인데 깊고 진할 수 있구나!
어쩌면 누군가와 통하는 건 시간을 오래 들이는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
우리의 언어가 서로 달라서, 제한된 시간이 있어서, 서로에게 더 진심일 수 있었다.
혜화역 버스정거장에서 헤어지면서 우리는 몇 번의 포옹을 나누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는, 또 보고 싶다던, 언제든 놀러 오라는 말들……이 우리 사이를 가르며 쏟아졌다.
한 번 용기 내서 찾아가 볼 작정이다.
왜냐면 삼삐에게 고백했듯, 나는 요새 내 안의 틀들을 하나씩 두드려보고, 흔들어보고, 때론 부셔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니까.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오래만에 한참 묵혀두었던 인스타를 열었다. 그렇게 삼삐와 인스타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