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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Jun 07. 2019

#4. 수입도 적은데 통장을 굳이 쪼개야 하나?

월급 관리의 기본, 지출 분류에 따른 '통장 쪼개기’




렛서씨, 9월부터는
정규직입니다.


   8월 어느 날, 늦은 퇴근길에 다 같이 잠깐 맥주 한잔하던 자리에서 팀장님이 갑작스럽게 이런 선언을 하셨다. 6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석 달쯤 될 때였다. 얼마 후 새로 작성한 계약서 말미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으로 한다'는 생소한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다. 연봉도 정규직만큼 올려 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규직이 되자마자 나는 보릿고개에 빠졌다. 계약직일 때는 연봉을 12달치로 균등하게 나누어서 받았는데, 정규직이 되면서 한 달 건너 상여금 100%를 지급하는 ‘퐁당퐁당 월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 참고) 하필이면 첫 달이 비상여달이었기 때문에, 월급은 원래보다 30만 원 정도 줄어들었다.

   어느 달은 월급 금액 앞자리가 1이었고, 다음 달은 앞자리가 3이었다. 매달 쓰는 생활비는 일정한데 수입은 들쭉날쭉하다. 이런 경우 상여달에 사고 싶은 것들을 한꺼번에 지르고 비상여달에는 쪼들리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소비 패턴이 망가진다. ‘나는 월 300만 원은 쓸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이번 달 월급이 이것뿐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카드빚에 영영 허덕이게 된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이 절식과 폭식을 반복하면서 건강만 해치는 것과 똑같다. 이게 바로 통장을 나누어 사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월급을 통장 하나에 몽땅 쌓아놓으면 돈 쓸 여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감이 없어진다. 가끔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누리는 것도 물론 좋지만, 실제 지갑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장 쪼개기'란 용도에 따라 월급 수령용, 고정지출용, 변동지출용, 비상금용 통장을 따로 만들어서 각 예산을 나누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꼭 나가야 할 돈을 엉뚱한 데에 미리 다 써버리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이것저것 사고 지난달에 쓴 신용카드 대금까지 빠져나간 후 뒤늦게 확인해보니, 이번 달 월세 낼 돈이 모자란다면? 우리는 앞글(#2. 어차피 나가는 돈, 다 똑같은 지출 아닌가?)에서 지출 성격에 따라 예산 나누는 법을 살펴보았다. 그 분석 내용을 실제 돈 관리에 적용하는 첫걸음이 통장 쪼개기이다. 고정지출 예산을 미리 빼놓으면 필요한 돈이 제때 나가도록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고, 변동지출 가용 금액에도 한도가 생겨서 과소비를 막아주며, 비상금을 모아서 특별지출을 대비할 수 있다.



   월급통장은 월급이 잠깐 들렀다 나가는 정거장이다. 이 통장에서 고정지출 통장, 변동지출 통장, 비상금 통장으로 각 항목 예산만큼을 이체한다. 원칙적으로 월급날 이후에는 월급통장에 잔고가 남아있으면 안 되지만, 나는 모든 항목이 제대로 이체되었는지 한 번에 확인하려고 각종 저축도 월급통장에서 바로 빠져나가도록 설정해두었다. 시간을 조금 들여서 월급날에 정해진 곳으로 정해진 금액이 빠져나가는 '퍼가요' 체인을 구축해두자. 

   고정지출 통장에서는 매번 제때 내야 하는 월세, 대출 이자, 각종 공과금 등이 자동 이체되도록 한다. 정해진 이체일에 통장이 '우연히' 비어있으면 안 된다. 연체료가 붙으면 원래 안 내도 되었을 돈까지 지불해야 하고, 연체가 반복되면 납부 독촉을 받으며 사용 정지를 당한다. 특히 핸드폰 요금 연체가 누적되면 신용 등급이 떨어져서 신용카드 발급, 대출 신청 등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참고로 각종 지로 고지서를 전자고지로 변경하고,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할인 혜택(ex. 전기요금 각 200원, 1%)이 있다. 모든 고지서를 내 메일함으로 받아보면 종이 낭비도 줄일 수 있고 관리·확인하기도 매우 편리해진다.

   변동지출 통장에는 체크카드를 연결하고 현금을 인출해 생활비로 사용한다. 식비, 교통비 등 매달 비슷한 금액이 나가는 항목은 엄밀히 따지자면 고정지출이지만, 결제수단이 동일하기 때문에 나는 변동지출로 분류해 관리한다. 신용카드 대금도 변동지출 통장에 연결해두고 종종 월급날 직후에 선결제하는데, 가끔 캐시백을 사용해 1만 원씩 할인받는다. 소액 이체할 일이 잦고 현금도 이 통장에서 꺼내서 쓰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이체·출금 수수료 우대 혜택이 있는 통장으로 선택한다.

   비상금 통장에는 여유 자금을 넣어두고 갑작스러운 특별지출이나 예산 부족을 메울 때 쓴다. 만약 퐁당퐁당 월급이라면 이 비상금 통장이 꼭 필요하다. 상여달에는 남는 돈을 넣어두고, 비상여달에는 모자란 만큼 꺼내서 예산을 맞춘다. 100만 원어치 자유를 한 달 누리고 두세 달간 그걸 그리워하느냐, 매달 50만 원어치 자유를 누리느냐 중 선택하는 셈이다. 비상금은 불시에 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돈을 묶어 두면 안 된다. 나는 CMA(증권사 등에서 판매하는 자산관리계좌) 통장을 사용하고 있는데, 입출금이 자유롭고 적은 금액을 짧은 기간 넣어두어도 이자가 붙는다. 


통장을 나누면
거래내역이 곧 가계부가 된다.


   여기까지 완료했다면 건강한 소비 생활을 위한 뼈대가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나누어두면 각 통장 입출금 내역만 확인해도 지출 성격별 재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남은 일은 매달 미리 정해둔 예산에 따라 생활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재무 계획을 수정·보완해나가는 일뿐이다. 그러면 이제, 저축은 어떻게 계획하면 좋을까?


인스타그램 @lets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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