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이란 단어와 인재라는 단어의 말에 대한 모순을 비판하는 에세이.
강물수 에세이
1. 성숙이라는 말의 무게
성숙해졌다는 말은 부모 마음에 들게끔 변했다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부모들의 수준은 낮다. 지적 수준은 높을지 몰라도 정신적, 정서적 성숙도는 굉장히 낮은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자식을 자신들보다 수준 높게 키운 헌신적인 부모인 것이고, 혹은 부모를 무시하는 싸가지 없는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는 책임감 강한 부모일 것이다. 좀 더 시선을 멀리 두고 객관화해서 바라본다면, 도찐개찐인 수준의 그 나물에 그 밥인 유전자 번식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 두 마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한평생을 반항적이고 철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부모와 대화를 하다보면,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는 “이제 네가 어른이 됐구나, 성숙해졌어.”라고 말하고, 듣기 싫은 말을 할 때면 “넌 아직 멀었다. 어른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리다.”라고 한다.
물론, 나는 점진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는 성숙했고 오늘은 철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지는 않는다. 결국 부모가 내게 던지는 평가는 그들의 감정에 따라 쉽게 쏟아지는,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일종의 감정적 트윗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2. 재목으로서의 사람
부모의 말이 가벼웠던 것처럼, 내가 요즘 자주 듣는 또 다른 말도 그 무게를 의심하게 된다. 바로 ‘인재’라는 말이다. 나는 이 단어가 불편하다. 사람을 재목처럼 다루는 느낌이 들어서다. 마치 나무를 잘라 판자나 가구로 만드는 것처럼, 사람도 쓰임새에 따라 길들이고 평가하는 언어가 아닌가 싶다.
성숙함이라는 잣대가 결국 부모의 마음에 드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던 것처럼, ‘인재’라는 말 역시 그 사람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포장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누군가의 잣대 아래 놓이고, 또 누군가를 재단한다.
특히 이 단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맞물려 더욱 역겹다. 경제는 자본주의, 정치는 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경영 마인드와 군국주의, 계급주의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곳에서 ‘인재’라는 말은 사람을 도구화하는 데 동참하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3. 말과 사람, 그 사이에서
‘성숙’이라는 말도, ‘인재’라는 말도 결국 누군가의 평가를 드러내는 도구다. 그 말들은 우리를 정의하고, 때로는 규정하려 든다. 하지만 그 말들이 과연 우리의 본질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부모의 말처럼 누군가의 평가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말들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쓰는 ‘인재’라는 말이 사람들을 편리하게 분류하고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는 그런 이름표를 기꺼이 거절하고 싶다.
결국 나는,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해야 한다. 나를 ‘성숙하지 못했다’고, 혹은 ‘철이 없다’고 평가하는 부모의 말에 얽매이지 않듯이, 사회가 말하는 ‘인재’라는 틀에도 갇히지 않으려 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말을 내게 붙일지 결정하는 것은 내가 선택할 몫이다. 부모가, 사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말의 무게를 정해야 한다.
2024.12.03
강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