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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도전

웹툰 작가 지망생 겸 요양보호사의 에세이 1

by 물수moolsoo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어둑한 집안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켠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면 아침 식사와 함께 크로키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1시간 더 잠을 잔다.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크로키로 손을 푼다. 새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연필 스치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깨워줄 때 모든 감각이 깨어난다.

매일 아침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어떤 날은 몸이 무거워 한 시간 더 눈을 붙이기도 한다. 6시 30분, 다시 울리는 알람과 함께 서둘러 요양보호사로서의 하루를 준비한다.


7시, 출근길. 웹툰 작가의 꿈을 꾸는 나는 지금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다. 이중생활이라고 해야겠다. 이 시간도 소중하다. 타인을 돌보는 일은 내 일상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주니까.

정오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시, 드디어 나의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패드를 켜고 펜을 들면, 나의 소중한 자식인 고양이 세 마리중 두 마리, 금이와 평이가 어느새 곁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늘 이렇게, 말 없이 나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다른 한 마리는 어린시절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학대 당한 경험에 의해 침대 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트라우마와 겁을 존중하며 굳이 나도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러면 알아서 나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먼 간격을 두고 매일 소통한다.


투룸에서 살고 있는 나는 거실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작은 방을 침실로 사용하고 있다. 작업실에서 보내는 오후의 시간들은 때로는 지우고, 때로는 다시 그리며 이 과정이 전부 괴로움으로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만화창작팀에 속한 결 작가님의 메시지가 도움이 되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말씀.

그동안 나는 왜 그렇게 조급해 했을까. 경쟁 상대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 세웠던 시간들이 참으로 길다. 취미로 방향을 돌리자니 미적지근하게 느껴져 불안했고, 진지하게 임하자니 실패에 대한 또 다른 부담이 되었다.

작업하는 것의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의 목표다. 팀 멤버들과 함께 하는 창작 여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고 완성, 완료라는 재미를 맛보았다.


밤이 깊어갈 때쯤, 하루의 작업을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내일도 이렇게 이중생활을 이어가겠지. 요양보호사로서, 그리고 웹툰 작가 지망생으로서.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비록 더디더라도, 이것이 나의 이야기니까.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이 도전이,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나는 오늘도 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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