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베이징] 갑자기, 인생 누들

싼리툰 北27号.廿七禾尚의 姥姥家臊子面

by 심루이

‘인생 땡땡’라는 명명에 대해서는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싼리툰(三里屯)에서 이 국수를 먹었을 때는 조금 흥분해버려서 '인생 국수인 것 같아'라고 쉬이 단정해버렸다. 바로 ‘北27号’의 '姥姥家臊子面'.(외할머니 집의 싸오즈미앤 정도)


이 국수는 내가 먹어온 국수 중 어쩌면 제일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는데, 마음의 엄청난 자극이 되어 버린 아이러니.


사오즈미앤(臊子面)은 산시성(陕西)의 전통면으로 '臊子'는' 肉丁', 즉 네모나게 썬 고기를 의미한다. 이 요리에는 볶은 고기 외에도 여러 가지 고명이 들어가는데 배색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초록색 마늘종 혹은 호박, 빨간 당근, 검은 목이버섯, 노란 지단/감자, 하얀 두부 등이 먹기 좋게 잘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야 한다나. 한 입 먹어보면 이 아름다운 무지개를 닮은 재료들이 아삭하면서도 부드럽게 입안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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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6-11-37-06.jpg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맛. 26위안


매운맛을 사랑하는 나는 모든 면에 '辣酱'을 넣어먹는 스타일이지만 이 면에는 넣지 않았다. 이 조화롭고 담백한 맛을 해칠 수 없다는 굳은 의지!




사실 이곳의 가장 인기 요리는 이거다.

酿皮 (냥피)*


베이징에서 늘 먹어오던 '酿皮'도 '인생 냥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차갑고, 적당히 매콤한… 완벽한 적당함이 있었다.


* 밀가루, 소금, 콩나물, 간장, 식초, 깨장, 고추기름, 기름, 마늘 즙, 땅콩, 셀러리, 오이, 다진 토마토를 무친 음식. 매콤하고 새콤달콤하며 쫄깃한 식감이다.


2020-11-26-11-26-18.jpg 18위안, 세련된 모습을 하고 고수의 맛을 뽐내던 이 집의 누들들



싼리툰 나리화원(那里花园)안에 있는 北27号.廿七禾尚는 겉으로 보면 국숫집이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깝다. 크지 않은 식당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아무하고나 섞여서 밥을 먹는 즐거움! 어느 중국인의 후기를 보니 27개의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대의 꼼꼼함과 한가함에 박수를!)

싼리툰의 어마무시한 맛집에 질렸다면, 담백한 국수 한 그릇을 찾으러 이곳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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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라멘집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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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모두들 옹기종기





누들 외에도 떡이 인기가 많던데 다시 가게 되면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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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사람들이 많이 시켜 먹던 것들
WeChat Image_20201208141953.jpg 바로 이 떡. 시킬까 말까 고민하다 면 2개에 밀림, 태어나서 혼자 두 개의 면을 시킨 적은 처음이었기에 진정한 인생 국숫집이라 할 수 있다.





뿌듯한 기분으로 나리 화원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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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6-12-05-01.jpg 아주 고요하던 평일 낮의 나리화원





인생 국수를 찾았다는 사실 외에도 이 날의 특별함은 아침 8시의 아무도 없는 싼리툰 타이구리를 봤다는 데 있었다. 늘 애플, 희차, 쉑쉑버거 등 인기 상점 앞 인산인해는 기본인 공간이다보니 아무도 없는 싼리툰을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도시의 산책자’가 되기로 결정하고 나서부터 나는 종종 오전 8시 도시 풍경을 마주하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더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방초지나 싼리툰 같은 쇼핑몰의 아침에는 청소부의 빗자루 소리와 내 숨소리로만 완성된 고요가 있다. 가끔은 시시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이 광경을 본 사람이 많을까?”라는 물음과 대답 앞에서 나도 모르게 짜릿해진다. 불금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힙한 음악으로 둘러싸인 싼리툰이 더 싼리툰 답긴 하겠지만 요즘의 나는 희소성에 더 큰 점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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