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베이징] ‘문구인’의 설렘, 读库 노트

그 이름, 文具人

by 심루이

우리 집에는 열정적인 ‘문구인(文具人)’들이 산다. 이들은 쓰지 않은 노트를 수십 권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쁜 노트를 볼 때마다 침을 흘리고, 평생 쓰지 못할 만큼의 펜을 이미 샀으면서도 또 산다. (엄마, 이 블루펜 안에는 실버 가루가 들어가 있어서 엄청 특별한 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 펜들과는 정말 다른 거야, 꼭 사야 되는 거야. 늬예늬예 암요암요) 서점에는 당최 책을 보러 가는 건지, 문구를 보러 가는 건지 알 수 없으며 문구류를 위한 수납공간을 사고, 수납공간이 비어서 또 문구 코너로 돌진한다. 심이는 별의별 이름의 노트를 만들어서 책상 앞에 꽂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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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탐하는 자세마저 유사한 원씨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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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참 많다- 가게책, 발표책, 영어 일기책,,, 명심하세요! 모두 다 다른 용도의 노트입니다~
2020-11-30-13-59-09.jpg 최근 심이가 구입한 각종 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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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인들이여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역시 옷과 책이었지만 그다음에는 펜, 노트 등의 문구류였다. 집에 있는 펜을 다 꺼내보고는 춘에게 “인간은 죽기 전에 과연 몇 개의 펜을 쓰고 죽는 것일까”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으며 ‘진짜 인간적으로 이제 펜이랑 노트는 사지 말자’는 암묵의 동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웃었을 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꽤 많은 펜들이 정리된 것을 확인하였는데 알고 보니 춘이 몰래 회사로 가지고 간 것이었다. 징한 사람... 어쨌든 내 눈앞에서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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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이 보내 준 사무실 책상 위 펜들 사진 ㅋㅋㅋ 동료들이 자리에 오면 모두 놀랜다고 합니다. -_-





베이징에 처음 왔을 때는 문구류가 별로 필요치 않았고 그나마도 대부분 이곳의 다이소인 ‘미니소’나 대륙의 실수인 ‘샤오미’에서 해결했으므로 중국의 어떤 문구 브랜드가 유명한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 #得力 ’와 ‘ #晨光 ’이라는 브랜드가 우리나라의 ‘모닝 글로리’나 ‘모나미’처럼 국민 문구 브랜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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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구의 양대 산맥! '得力’와 ‘晨光'





중국 문구의 양대 산맥을 만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나의 문구 열정을 다시 분출하게 한 물건이 있었으니 바로 S 언니가 선물로 준 ‘ #读库 ’의 ‘ #北京风俗 (북경 풍속)’ 노트. 고급스럽고, 중국스러운 빨간 커버가 인상적인 이 노트는 중간중간에 베이징 풍속을 알려주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베이징빠인 나에게) 미적으로도 훌륭할 뿐 아니라, 소장 가치가 있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한눈에 반해서 덕질을 하다 보니 '읽기의 창고'라는 의미를 가진 ‘读库’는 '장립헌(张立宪)'이라는 편집장이 2달에 한 번 발행하는 잡지 브랜드였다. 이곳에서 스토리가 담긴 다양한 종류의 노트를 만들고 있다. (각종 오프라인 서점 및 타오바오에서도 바로 구매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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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중국스러운 레드레드

북경 풍속 외에도 베이징의 가장 큰 특색인 골목 이야기를 담은 ‘후통’, 유명 화가 우관중의 작품을 담고 있는 ‘我负丹青’ 등 다양한 시리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펴보다 보니 '어머, 이건 사야 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후통과 우관중 노트를 구입했다. (각종 오프라인 서점 및 타오바오에서도 바로 구매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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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다 나름의 특색이 있는 노트들

- 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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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hat Image_20201219003048.jpg 아름답고 평화로운 후통의 정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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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우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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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hat Image_20201219003205.jpg 중국 전통 기법에 서양 미술의 추상화 기법을 조합해 현대 미술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吴冠中 #우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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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다 나름의 특색이 있는 노트들




나는 사실 펜보다는 노트에 열광하는 편인데, 노트에는 어떤 이야기가 맞물려 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종종 여행지에서 노트를 사다 준다. 문학소녀였던 나는 곰돌이 푸우 노트에 아름답기 짝이 없는 자작 시를 가득 채워 넣기도 했었는데, 그 노트 3권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오그라드는 손발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자주 펴보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떤 것에 빠지면 나는 노트부터 만들고, 노트마다 어울리는 용도를 붙여두기도 한다. (아 심이가 아빠가 아니라 나를 닮은 것이었… 그리고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무언가를 적고 있는 우리 아빠도 문구인 같다. 문구 사랑은 명백히 유전이었다. ) 미친 사람처럼 중국어에 빠져 있을 때는 여러 개의 노트를 사서, 감성 글귀/드라마 표현 정리/단어 노트/중국어 문화 공부 등으로 주제를 정해서 혼자 뿌듯해했었다.


어쨌거나 나는 '북경 풍속'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이 붉은 노트에 나의 베이징 기록들을 적어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작은 문구들의 힘을 믿는다.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문구를 사서 써봄으로써 돌파구 혹은 해결책을 얻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문구 중


정말 그렇다. 그리하여 나는 读库의 노트 표지에 손을 가만히 올려두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작은 노트가 나를 어디론가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2020-12-01-14-05-23.jpg 문구인들의 편지 사랑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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