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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Sep 11. 2021

아픈 친구를 위해 탄생한 난닝 라오여우펀(南宁老友粉)

面条之路_八十八粉儿

베이징 생활 4년 차. ‘면 애호가’로 그렇게 자주 면을 먹으면서도 아직도 중국 지역별 대표 면을 다 먹어보지 못했다. 늘 가던 곳만 가고, 먹던 것을 선호하는 습관이 문제다.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은 '예전 것'만 못하기 쉽다. 낯섦은 익숙함을 이기기 힘드니까. 그렇다고 예전 것만 고집한다면 새로운 자극이 없는 건조한 인생이 되겠지.


그러니 일상의 타성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는 '굳이' 찾아서 '굳이' 먹어보는 '굳이 해본다 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베이징에 숨겨져 있는 지역별 맛집들을 샅샅이 뒤져서 굳이 신나게 먹어보기로. ㅋㅋㅋ


중국은 지역 대표 면들이 분명하고, 면들의 탄생 배경도 다양한 문화와 역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으니 누들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중국 지리와 문화에 대한 감각이 더 분명해질 것 같다.




‘베이징 누들 로드’의 첫 번째 면은 저~~~ 아래쪽 화남 지역 ‘광시좡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의 대표면인 ‘老友粉(라오여우펀)’이다. 광시좡족자치구는 베트남과 맞닿아있는 중국의 남단. 좡족(壮族)은 56개의 민족 중 한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데 약 2천만 명이라고 한다. 칠레, 네덜란드의 인구와 맞먹는다. 인구수 기준 세 번째 민족인 만주족이 약 1천만 명 수준이라고 하니 차이가 꽤 많이 난다.


광시 지역 대표 면으로는 약간 고약한 냄새를 가지고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류저우 뤄쓰펀(우렁이면_柳州螺蛳粉)’과 ‘난닝 라오여우펀(南宁老友粉)’이 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좡족!


우선 나의 정보 창고인 베이징러와 TO, 따종을 종합해서 광시 지역 전문 면 집 한 곳을 픽했다. 바로 《八十八粉儿>. 최근에 분점을 냈다고 하는데 나는 팡차오디 바로 앞 SOHO샹두 지점으로 갔다. Time Out은 “한 그릇의 면 치고는 꽤 비싸긴 하지만 현지의 맛(地道的味道)과 가장 가깝다"라고 평가했는데 가격 면에서는 과연 그렇다. 한 그릇에 56위안. 20위안 국수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베이징의 물가를 생각해 볼 때 비싼 가격이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훠궈 체인점 ‘呷哺呷哺(샤브샤브)’의 점심 훠궈 세트 가격과 맞먹는 가격으로 아마 내가 중국에서 먹었던 면 중에 손에 꼽게 비싼 면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수도 베이징에 있다 보면 가장 마음이 약해지는 단어가 바로 ‘地道的味道’다.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 내가 지금 난닝에 갈 수도 없는데 ‘띠다오(地道)’를 위해서라면 조금의 지출은 괜찮다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八十八粉儿

东大桥路8号院2号楼SOHO尚都西塔1123

11:00-21:00

예쁜 하늘 보며 자전거 타고 룰루랄라 면 집 찾아서!




100년의 역사를 가진 '老友粉'은 ‘오래된 친구’라는 정겨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주 직관적이고 다소 촌스러운 이름인 우렁이 면(螺蛳粉) 바로 옆에 짝꿍처럼 있어서 정겨움이 배가되는 것일지도. 중국의 면 요리 작명은 별다른 규칙이 없고, ‘무정부적’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참으로 그렇다. 따오시아오멘(刀削面)처럼 면을 자르는 방식을 칭하기도 하고, 우렁이면처럼 들어가는 재료를 붙이기도 하고, 딴딴멘(担担面)처럼 파는 방식에 따라 명하기도 한다.


어쨌든 '老友粉'은 아픈 친구를 위해 한 할아버지가 만든 요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오래 감기를 달고 있던 친구를 위해 할아버지는 다진 마늘(蒜末), 콩비지(豆豉), 고추(辣椒), 다진 고기(肉末), 절인 죽순(酸笋), 후춧가루, 토마토 등을 재료로 따끈한 토마토 육수 베이스의 이 면을 만들었다. 면은 원래 쌀국수가 기본이지만 최근에는 밀가루 면으로도 만든다.


면이 나오자마자 국물 맛을 보았는데 새콤하게 절인 죽순(酸笋)향이 다소 강하게 난다.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겠지만 나는 원래 이 시큼한 토마토 육수를 사랑한다.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던 예전의 나로서는(특히 물에 그냥 토마토를 갈아 넣은 것 같은 토마토 주스는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베이징에 처음 왔을 때 “토마토 육수에 면을 넣어서 먹어? 그게 맛있다고?”하며 놀라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 토마토 육수를 사랑한다. 그것은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맛.


어쨌든, 마라 맛만 선호하던 나의 입맛에도 '老友粉'은 담백하고 괜찮았다. 면을 빨리 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가끔 동글동글한 쌀국수를 먹을 때 엄청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이 집의 쌀국수는 납작한 모양이라 먹기 편했다.


#베이징을_걷는_도시산책자 #걷고_먹고_기록하기 #어쩌면오지라퍼 #지금은베이징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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