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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교통과 경이로운 운전실력, 西打磨厂街

베이징에서 운전하기

by 심루이

베이징 생활 햇수로 5년 차, 이제 베이징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화에 익숙하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두 개 있었으니 하나가 화장실, 그리고 교통 문화다. 베이징에 처음 와서 제일 무서웠던 건 진직 신호 시 진행되는 비보호 좌회전. 돌진하는 직진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뚫어서 ‘비 사이로 막가’처럼 좌회전을 성공해 내야 하는 미션이었는데 나는 조수석에 앉아 매번 눈을 질끈 감았다.


운 좋게 차량 좌회전 신호가 있는 곳에서도 행인들은 다들 좌회전 신호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횡단보도 중간까지 가서 서 있었다. 별생각 없는 몇몇은 휴대폰을 보며 좌회전 차량이 달려오는 지도 제대로 보지 않고 걸어가는 통에 나는 ‘저러다 달려오는 좌회전 차량에 치이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며 멀리서 벌벌 떨었다. 분명 녹색 불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도 무조건 우회전하며 밀고 들어오는 차량, 말도 안 되는 위치에서 갑자기 유턴을 하거나, 급 정거하는 차량, 끼어들고 나서 그제서야 깜빡이를 켜는 차량(읭?) 등등등 공포스러운 거리의 풍경들은 많았다.


베이징에 처음 놀러 온 앤드류는 조수석에서 춘이 운전하는 것을 한참 지켜보더니 조수석 손잡이를 아주 꽉 잡은 채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여기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가면 되는 건가?”


2017-02-11-17-06-39.jpg 그런데 상하이에 갔더니 다들 젠틀한 운전을 뽐내서 놀랐던 기억. 도시마다 차이가 많이 있을 듯.




춘보다 6개월 정도 늦게 베이징에 와서 보니 그의 운전 스타일이 많이 변해 있었다. 서울에서는 원체 방어와 양보를 하던 사람의 운전이 조금 거칠어진 것이다. 오빠, 근데 왜 여기에서는 양보 운전을 안 해? 운전 스타일이 많이 바뀐 것 같아. 의아하게 묻는 나에게 춘은 비장하게 말했더랬다.


한번 양보하면 15억 인구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이런 베이징의 교통 상황은 뒤늦게 운전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무사고를 기록 중이었던 나의 운전 의지를 완벽히 꺾어버렸다. 베이징에 오자마자 나는 이런 결심을 했다. 이곳에서는 추운 겨울 두 시간을 걸어야 해서 귀가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운전 따위 하지 않겠어.


어쨌든 유난히 리액션이 크고 잘 놀라는 나는 처음에 조수석에 앉아서 ‘헉헉! 꺅꺅! 저 사람 봤어? 오토바이 온다!!’ 이러면서 난리를 쳤는데 나의 이러한 리액션이 운전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간파한 후로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내가 찾은 참신한 방법은 조수석에 앉아서도 절대 앞이나 옆을 보지 않는 것. 그냥 백 프로 원 기사를 믿고 나는 딴짓을 한다.

2017-04-18-14-07-43.jpg 처음에는 길을 건널 때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이제 내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터득했는데 ‘길을 건널 때 중국인 옆에 딱 붙어 걷는다’이다.




거친 환경과 한결같은 믿음은 사람을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춘이 험난한 베이징 생활 끝에 얻은 최고의 스킬은 주재원 생활의 노하우도, 중국어도 아닌 5년간 베이징 운전 무사고에 빛나는 엄청난 운전 실력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그냥 잘한다는 수준을 진작에 뛰어넘었다. 한국에서도 그의 운전은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전혀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지금은 부드러움에 거친 남성미가 덧대어졌고 도전적이면서 안전성까지 동시에 보여준다.


그가 좁은 후통 골목골목을 누비며 깻잎 운전을 할 때, 나는 ‘정말 이게 가능하다고?!!’를,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본 듯한 골목 내 주차, 그러니까 집게로 차를 집어서 넣어야만 간신히 껴들어갈 수 있음이 분명한 곳에 무심히 일렬 주차를 해버리면 ‘이건 정말 경이롭다’를 몇 번이고 외친다. 지난 노동절 평요고성 여행 때 단 두 개의 휴게소에서 약 10분 휴식만으로 9시간 동안 스트레이트 운전을 하며 그는 운전 인생 정점을 찍었다.


어쨌든 주말이면 만능 원기사 덕에 우리는 늘 편안한 산책을 한다. 베이징 시내로 나가면 주차가 여의치 않을 때가 많은데, 춘은 마치 띠디 기사처럼 목적지에 우리를 안전하게 내려다 준 뒤, 하이에나처럼 주차 자리를 찾아 사라진다.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우리가 있는 장소로 유유히 나타난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에 갈 때면 자전거를 타고 주차 스폿까지 날쌘돌이처럼 날아가 우리를 태우러 온다.


베이징의 각종 교통 환경을 생각해 보면 일련의 과정에서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고난이 있었을 법이 분명한데 그의 행동들은 매우 여유로워 고수의 향내를 풍긴다. 이런 엄청난 희생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즐거워 보이게끔 만드는 그는 진정한 고수겠지만.


2021-07-04-15-38-30.jpg 长巷三条, 진짜? 진짜? 여기에 들어가서 주차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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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통 집게 주차를 스무스하게 성공한 덕에 독특한 느낌의 후통까지 잘 즐길 수 있었다.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 '메탈 핸즈(metalhands)' 전문(前门)점을 찾은 이날에도, 카페와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아주 좁은 후통 '长巷三条'에 주차를 하는 용기를 보여준 원기사. 덕분에 아주 더운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편하게 후통을 걷고, 메탈핸즈의 분위기를 즐겼다.


메탈 핸즈 지점 중 단연 압도적인 분위기를 뽐내는 전문점. 이곳은 원래 청나라 말기 여관이었던 ‘의성점(义诚店)’을 개조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카페와 이어지는 거리 '西打磨厂街'다.


명 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이 거리는 이름 그대로 동기와 석기를 다듬는 공장이 많았던 곳이었다. ‘전문대가(前门大街)’와 매우 가까워 상업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라 청말, 민국 시대에 ‘西河沿、鲜鱼口、大栅栏’과 함께 ‘전문 밖 4대 상업 거리(前门外四大商业街)’로 지정될 만큼 성황을 이루던 곳이다. 상업이 발달했던 만큼 은행도 많고, 근처에 바로 기차역이 있어 여관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유명 식당 东兴居, 福星楼, 유명 안경점 三山斋 등을 비롯해 약국, 두부집 등 수많은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 거리를 아이와 함께 걷다 보니 무엇보다 굉장히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받았는데, 바이두를 찾아보니 역시 2015년에 쿠마 켄고, 마암송 등 글로벌 유명 디자이너 7명을 앞세워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했다고 한다. (거리 안에 7명이 설계한 7개의 대표 공간이 있다) 옛 것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미를 접목시킨 것인데, 이후 문화 혁신과 예술 교류를 위한 공간들도 많이 입점시켰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남기고 판매 기능을 활성화해서 관광객들의 이목을 끄는 대책란 거리 등 다른 후통들과는 완벽히 차별화된 새로운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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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반해버릴 수밖에 없는 메탈핸즈 외관

西打磨厂街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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