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중매의 현장
신입생 시절 이어령 교수님의 특별 강연을 딱 한 번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땐 신입생 특유의 들뜸과 설렘으로 영혼이 반쯤은 둥둥 떠 있던 상태여서 강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교수님의 몇 마디 말씀은 늘 내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며 이 말을 자주 떠올렸다.
‘여러 사람이 운동장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면 일등과 꼴등이 생기지만 각자 저마다의 길로 달리면 모두가 행복한 일등을 할 수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멋있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그 말에 큰 빚을 지면서 사는 느낌이다. ‘바구니에 남은 사과는 몇 개인가요?’라는 수학 문제의 답은 ‘철수’,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땡땡땡’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 문제에는 ‘밥상만’, ‘병을 높여 부르는 말은?’이라는 어휘 문제에는 ‘병님’이라고 적어두고 매일 소울풀하게 춤만 추고 있는 심이를 볼 때마다 솟구치는 걱정을 다스리기에 저 말보다 적당한 글귀를 찾지 못했기에.
베이징 중산 공원(中山 公园)은 베이징의 중심인 자금성의 남쪽, 천안문의 서쪽에 위치하는 공원이다. 요나라 때는 흥국사(兴国寺)였다가 원나라 때 만수 흥국사(万寿兴国寺)로, 1914년 일반 시민에 개방하여 ‘중앙 공원’이라 개칭했으며 이는 베이징 최초의 황실 정원 공원이 되었다. 명나라 영락제 때인 1421년 창건된 뒤 명&청 시대의 왕들이 토지신과 오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도 있다.
1925년 중국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쑨원의 사망함에 따라 그의 유체를 이곳에 안치하고 그의 호를 따서 '중산당'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1928년 중산 공원으로 이름을 아예 바꿨다. 1988년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됐다.
심이와 중산 공원(中山 公园)을 걷는데, 인파가 몰려 있는 곳이 있길래 살펴보니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의자에 앉아 계셨고, 바닥에 A4용지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A4 용지 가득히 적혀 있는 건 한 사람의 인적 사항!!! 바로 이것이 말로만 듣던 ‘공원 중매’란 말이냐. '相亲角'라 불리는 공원 중매는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자식들의 이력서를 A4용지나 우산에 붙여 놓는 일종의 중매 장터다.
이력서를 살펴보니 나이, 키, 몸무게, 대학교와 전공은 기본이고… 어느 지방 호구(户口)를 가지고 있으며(중국인들에게 호구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상형까지 소상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연락처는… 그 & 그녀의 ‘妈妈’라고 적혀 있었다. 셋이 나란히 서서 집중해서 내용을 살펴보는데, 내가 봐도 탐이 나는 인재들이 많았다. 부모님에 의해 간추려진 정보에 따르면 다들 성격은 참으로 온화하고, 외모는 준수했다. 다들 고학력, 고연봉이었고 그 힘들다는 베이징 호구를 가진 사람들도 많아서 지금까지 짝을 못 찾았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한 장의 종이에 압축되어 중산 공원에서 펄럭이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 것인가… 나도 나중에 심이가 나이가 차도록 아무도 안 만나고 결혼 생각이 없으면 저렇게 안달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없니?’라고 매일 물어볼 것인가… 궁금해지면서 심이가 스스로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알랭 드 보통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내가 가는 길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길의 끝에서 알게 될 때다”라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저마다의 길'을 제대로 찾으려면 인생도 여행도 산책도 충분히 헤매봐야 한다. 적당한 시기에 충분히 헤매지 않으면 너무 늦게, 심하게 헤맬 수 있다는 것을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충분히 헤맬 수 있는 필요조건은 역시 헤맬 자유를 허락하는 '부모'다. 우리는 과연 그러한 부모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이어령 교수님의 ‘모두가 행복한 일등이 될 수 있는 운동장’은 언제까지 나를 잡아 줄 것인가를 생각했던 중산 공원에서의 어느 오후.
베이징_도시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