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혼밥러와 따종디앤핑 (大众点评)

자 혼자 밥을 먹어봅시다

by 심루이

서대문 설렁탕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다는 남친을 찾으러 들어간, 단 한 번도 식당 혼밥을 해본 적이 없던, 이십 대 후반의 여자는 충격을 받게 되는데 다름 아니라 남친의 자리 선정과 반주 때문이었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제일 잘 보이는' 정중앙 자리에서 '혼자' 휴대폰도 없이 '소주'와 함께 설렁탕을 '정성스럽게' 먹고 있었다.


메뉴와 자리 선정, 식사의 집중도 등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은 각자 다를 테지만 내 기준으로 춘은 완벽한 '프로혼밥러'였다. 오랜 자취 생활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집에서 혼자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을 떠나서 거리낌 없이 어느 식당에나 혼자 들어가고,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서 휴대폰이나 책 등 다른 미디어 없이, 때로는 혼술을 해가며 맛있는 한 끼를 해치우는 사람.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서 먹지, 왜 청승맞게 혼자서 밥을 먹어? 아는 사람 만나면 부끄럽잖아… 뭐 이런 구시대적 생각 때문에 단 한 번도 식당에서 혼밥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런 그가 신기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랬던 내가 베이징 생활 4년 차 ‘프로혼밥러’가 되었다. 시도때도 없이 혼자 식당에 당당히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가끔은 책이나 핸드폰도 없이 음식에만 집중해서 정성스럽게 한 끼를 먹는다. 주변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매의 눈으로 유심히 관찰하면서, 중국인과 눈이 마주치면 가끔 눈인사도 해가면서, 다음에 저 사람이 먹는 거 꼭 먹어봐야지 기억도 해가면서. 중국 내 대부분의 식당 메뉴, 위치, 평점, 리뷰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APP '따종디앤핑(大众点评)'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미각을 깨워줄 새로운 음식을 찾아 매일 ‘따종디앤핑’에서 뒤지며 중국인들의 댓글과 평점까지 샅샅이 살펴보는 나의 모습은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미식계의 하이에나’ 같은 모습이다. 프로 혼밥러의 상위 레벨인 '혼자 고기 구워 먹기'는 아직 도전해 보지 못했지만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정말 ‘프로혼밥러’로 성장하고 있구나 싶었던 순간은 2년 전쯤 난뤄구샹 좁은 골목 끝 오래된 밥집에서였다. 관광객은 없어 보이는 낡은 밥집의 좁은 식탁에서 20대 청년과 합석을 했다. '와, 나 혼밥게이지 한 단계 상승한 거 같아!'하며 혼자 짜릿해 하고 있는데 청년이 추가 결제도 없이 밥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슬쩍 보니 옆 테이블 젊은 여자도 빈 그릇을 내밀었다. 그 순간 나도 속는 셈 치고 이모님께 내 그릇을 내밀어 보았다. 식당 이모님은 자연스럽고 빠르게 내 그릇을 가져가더니 밥과 돼지고기볶음을 다시 한 가득 얹어서 가져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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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코 앞에서 한 끼 식사를 함께 했던 중국인과 자연스럽게 한 그릇 더 리필해 주신 이모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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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맛있었던 한끼




베이징에 처음 와서 중국어가 서툴 때는 주문 자체가 쉽지 않았다. 요즘은 대부분 QR코드로 주문을 하긴 하지만, 3년 전인 2017년에는 카운터로 직접 가서 주문하고 번호표를 가져오는 작은 식당들도 많았다. 앉아서 메뉴판을 보고 주문할 때는 손으로 가리키며 ‘来这一个(라이쩌이거, 이거 하나요)’ 마법으로 나의 서툰 중국어 실력을 감출 수 있었지만, 서서 주문하는 경우에는 직원에게 메뉴 명을 알아듣게 얘기해야 하는 난관이 있었다.


지인 중 한 명은 PPT 발표할 때 쓰는 ‘빔 레이저 포인터’를 이용해서 주문하곤 했다. 빔 레이저 포인터가 없는 나는 핸드폰 카메라 줌을 한껏 당겨 먹고 싶은 메뉴 이름과 사진을 찍어서 직원에게 보여주는 고리타분한 방법을 썼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식당에서 QR코드를 이용해 메뉴를 주문한다.


따종디앤핑에는 평일 점심 타오찬(세트)가 많아서 잘 고르면 괜찮은 세트를 아름다운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대부분 식당에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로 구성하기 마련이라 실패의 위험도 적다. 식당에 도착하기 전 미리 APP에서 결제하고 결제한 코드를 보여주면 된다. 하나씩 도장 깨는 기분으로 먹어 치우고 있는 베이징의 점심.


한산한 평일 낮, 수제 맥주 전문점에서 앞자리 다정한 커플 뒷모습을 보며 혼맥을 하다 보니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인다. 창문으로는 낙엽이 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이렇게 좋은 혼밥의 시간을 왜 멀리했을까.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이 뜻밖에도 내게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과 한 끼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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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언니가 소개해 준 아고라 서점에 갔다가 지하에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渝是乎'가 있어서 당장 결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渝是乎'는 酸菜鱼 체인점인데 酸菜鱼는 신선한 차오위(산천어)에 새콤짭짤한 쑤안차이를 넣고 끓인 음식으로 쓰촨 지역에서 가정식으로 많이 먹는 탕이다. 민물 고기인데 강한 마라 양념도 없어서 비리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비린 맛이 하나도 없었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가격도 적당해 젊은 층과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渝是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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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찬 메뉴를 선택해서 결제하면 코드를 받을 수 있다. 이걸 직원에게 보여주면 된다.



리두 대약 大约 비어의 평일 점심 버거+맥주 세트, 55위안에 맛있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맥주 한 잔이 포함되어 있다. 원래 가격 115위안을 생각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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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인기 수제 브루어리 중 하나인 대약 비어


리두 크라운 플라자 호텔 1층 카페 ‘크래프트’의 조식 타오찬도 정말 칭찬할 만하다. 이 가격(48위안, 한국 돈 8,200원 정도)에 이렇게 많이 준다고? 당황스러울 지경… 이걸 먹으면 배가 꽤 불러서 점심까지 커버 가능. 중식과 서양식 중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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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따종디앤핑만 잘 써도 엄청나게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베이징_도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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