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겨울 옷을 보내는 寒衣节
한 공간을 파악하는 범위와 깊이는 이동 속도에 반비례하는 게 아닐까. 차를 타고 쌩쌩 달리며 우뚝 솟은 빌딩을 감상하거나 버스 안 중국인들과 나란히 앉아서 그들이 어떤 뉴스를 보는지 힐끔거리거나, 가성비 최고의 교통수단(한 번 타는데 한국 돈 170원)인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가을바람을 맞는 것도 모두 좋아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천천히 걷는 게 제일 좋다. 걸을 때 느긋한 시선과 속도에서 그곳을 가장 깊숙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거리 한가운데서 15위안에 이발을 하는 중국인 할아버지를 만난 것도(거리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가득했지만 이발이 끝나자마자 굉장히 신속한 속도로 머리카락을 말끔히 처리하는 모습에서 장인의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자판대에서 경쟁적으로 산 빠오즈와 또우장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젊은이들도, 무더운 여름 티셔츠를 배 위로 반쯤 올린 채 마작에 몰두하는 아저씨들도 모두 걷다가 불쑥 만난 풍경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자주 걷는 장소 중 하나인 중국 미술관 근처에서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진지하게 종이돈을 태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태우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불꽃이 인도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나 뭔가를 불 속으로 계속 던지는 사람들의 자세로 보나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태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종이돈. 대도시 한가운데서 대체 뭐 하는 거지? 남편과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궁금한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우리는 바이두를 뒤지고 중국인 친구들에게 또 물어봤다.
‘寒衣节’
말 그대로 해석하면 ‘겨울 옷의 날’쯤 되겠다. 조금 더 알아보니 귀신을 기리는 ‘三大鬼节’ 중의 하나로 (청명절(清明节), 중원절(中元节)이 나머지 두 개의 ‘鬼节’다.)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며 보통 조상의 무덤가나 강가, 사방이 잘 통하는 사거리에서 종이돈이나 종이 옷을 태우는 날이라고 한다. 날짜는 매년 10월 초하루인데 이때가 날씨가 추워지는 시점이라 따뜻한 옷을 사 입으라고 ‘노잣돈’을 보내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送寒衣(겨울 옷을 보내다)’라고 표현한다.
원래는 오전 11시에서 12시까지 주로 이뤄지는 의식이지만 요즘은 저녁에도 이어진다고 한다. 거리 바닥을 살펴보니 이미 여러 곳에 이미 타버린 재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른 세상에서 춥지 않도록 옷을 보내준다고 생각하니 조금 이상하지만, 왠지 뭉클해지기도 했다.
언제나 수준 있는 각종 전시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중국 미술관(中国美术馆_ National Art Museum of China)> 근처는 사방으로 유명한 후통이 뻗어 있고, 최근 떠오르는 핫플레이스가 많아서 언제 걷더라도 신나게 걸을 수 있다. 중국 미술관 맞은 편에 중국 지성의 산실인 <산롄타오(三联韬) 서점> 본점이 있고, 서점 바로 옆 <푸산카페(福叁咖啡)>를 지나쳐 후통을 걷다 보면 베트남 음식 전문점 <SUSU(苏苏)>의 본점이 비밀 공간처럼 숨겨져 있다. 낡은 자전거가 놓여 있는 후통을 따라 쭉 들어가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만나게 되는 낡고 빨간 문. 별다른 간판도 없는 바로 그 문이 <SUSU(苏苏) hutong courtyard>로 들어가는 입구다.
#중국미술관
# 산롄타오(三联韬) 슈뎬 본점
# 푸산카페(福叁咖啡)
# SUSU(苏苏) hutong courtyard
근처에는 어딜 찍어도 작품이 되는 <木木艺术区_무무예술구>가 있다. 그 안에는 <% 아라비카 카페>, 수제 맥주 브루어리 <京A Taproom>이 있다. 조금 더 걸어 가면 커피뿐 아니라 브런치까지 먹을 수 있는 커피 브랜드 <메탈헨즈MetalHands> 본점까지 연결된다.
# 메탈헨즈MetalHands
좀 더 걷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 오르는 날이면 연극, 영화 관련 단체들이 몰려 있는 <77文创园>까지 간다. 이곳은 <798 예술구>처럼 옛 공장을 개조해서 2014년에 만들어졌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큰 사거리로 나왔다. 여전히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이돈을 태우고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본 중국 친구는 고인을 추모하는 의식은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일러주었다. 신성한 의식이라 그런 것이겠지. 얼른 사진을 지웠다. 오늘도 길 위에서 우리는 그저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뼈저린 실감을 한다.
외국에서 지내는 것의 메리트 중 하나는 자기가 단순히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
가령 약자로서 무능력한 사람으로서, 그런 식으로 허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혹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귀중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_무라카미 하루키 중 발췌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처럼, 가끔은 호기심 넘치는 여행자처럼,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 이방인으로 산다.
베이징_도시산책
도시와 마음을 함께 산책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