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뻔뻔하다’는 말을 '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스스로를 대면하는 데 있어서는 꼭 그렇지 만도 않다. 낯선 타국에서 백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마음이 자주 널뛴다.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니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그러니 수시로 나를 갉아먹으려고 다가오는 복잡한 감정의 파도를 매우 뻔뻔하게 다독이는 나만의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야만 했다.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감정적인 나를 달래는 마법의 3종 주문 세트가 있다면 그건 바로 <그건 니 생각이고 + 별 거 아니라고 스피릿(ft. 장기하) + 그러면 좀 어때서(ft. 춘)>다.
이 부적 같은 주문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은 감성 덩어리였던 스물다섯의 나는 쉽게 즐거워지지만 그만큼 뜻대로 되지 않는 작은 일에도 쉽게 우울해졌다. 귀차니즘이 발동되어 예약을 미루고 있던 비행기 표 값이 하루 사이에 훌쩍 뛰거나, 오랜만에 마음먹고 나들이를 왔는데 차가 너무 막히거나, 업무 상의 사소한 실수로 먹어도 되지 않을 욕을 먹거나, 그런 많은 순간들. 1초 만에 우울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을 준비를 하던 내게 감정의 파동이 거의 없는 춘이 늘 로봇처럼 하던 말.
돈 좀 더 내면 어때서. 좀 돌아가면 어때서. 사람 좀 많으면 어때서.
그래도 괜찮아, 별일 아니야.
처음에는 조금은 무책임해 보이는 그 말들이 얄미워서 ‘아냐, 별일이니 그렇게 얘기하지 마’라고 쏘아붙였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오래 듣다 보니 정말 그랬다. 별일 아니었다. 안달복달한다고 바뀔 수 있는 일도, 후회한다고 사라질 일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별일일 수도,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일.
어쩌면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늘 지니고 살면서 <그러면 좀 어때서, 괜찮아>라는 단호박스러운 누군가의 말을 간절히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宝钞胡同
난뤄구샹(南锣鼓巷) 맞은편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베이러우구샹(北锣鼓巷) 바로 옆에 더 숨겨진 후통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宝钞胡同(빠오차오)’이다. 좁고 정신없는 골목이라 지나치기 쉽지만 이곳에 보물 같은 공간들이 숨어 있다.
후통 초입인 88号에 위치하고 있는 <老石饺子家常菜>는 운치 있는 사합원 정원에서 만두와 맥주 한 잔 하기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운남성 도시 ‘따리(大理)’ 음식을 만드는 <大理人家>를 만날 수 있다. 골목 깊숙하게 숨겨져 있어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브런치 집 <Toast at The Orchid>. 1층에서 호텔도 함께 운영 중인 보물 같은 곳이다. 야외 테라스에서 후통 전경을 내려다보며 특별한 브런치를 먹을 수 있다. 그 바로 옆에 위치한 <The bake Shop + 福荣记>. 낮에는 커피와 식사를, 밤에는 술 한잔이 가능한 왕홍 다카디 카페다. 저녁 6시에 오픈하고 저녁 공연이 있는 바 <모더니스타 Modenista>도 이 후통의 자유로움을 한껏 살린다.
파격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인상적인 ‘싸구려 커피’로 데뷔와 동시에 큰 화제가 된 ‘장기하와 얼굴들’은 더 이상 완벽한 앨범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18년 해체를 선언했다. 그들만의 감성과 유머를 좋아했기에 아쉬워하며 마지막 앨범을 들었다. 마지막 곡은 ‘별거 아니라고’라는 노래였다. 처음에는 장얼의 마지막 곡 치고는 다소 심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듣다 보니 그것이 그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별거 아니라고. 조그마한 약속마저 이제는 두려운 내게 뭐든지 두려워할 건 없다고 알고 보면 다 별거 아니라고.
별거 아니라고 가사 중
듣다 보니 ‘알고 보면 다 별거 아니’라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별것인 일들이 판을 치는 올해를 보내며 ‘그건 니 생각이고 스피릿’에 이어 ‘결국 다 별거 아니라고 스피릿’을 가지기로 했다. 이렇게 또 한 겹의 면역력이 나를 에워싼다.
베이징_도시산책
도시를 걸으며 마음을 산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