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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4. 2021

인사 하나 잘했을 뿐인데 유채 나물 5킬로가 생겼다.

인사가 만사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흔히 말하는 ‘연대’의 감각 아닐까. 망했다는 생각에 손마저 얼어붙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손들 같은 것. 그 손들이 누군가를 필요한 형태로 만들어가는 과정 같은 것. 등 뒤로 따뜻한 눈빛들을 가득 품고 살짝 펴보는 어깨 같은 것. 누군가 박살 날까 봐 걱정될 때 가만있지 못하는 것. 


김혼비, <다정소감>


나의 재능은 모든 분야에서 애매하지만, 빼어나게 특출난 분야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인사하기’다. 어렸을 때 나는 동네 주민 모두에게 크게 인사하는 꼬마로 유명했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모두에게 인사를 잘했다. 모든 일에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반갑게 인사하는 행위만큼은 좋은 점만 있다고 생각한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시절, 업무 담당자로 우리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시던 인사팀 과장님은 한 달 간의 연수 막바지에서 현업에 가면 주의해야 할 상황들을 하나하나 일러주셨더랬다. 잘 걷지도 못하는 꼬마를 물가에 내놓은 심정이라며, 차분하게 말씀을 이어가시던 찰나, 마지막에 조금은 높은 데시벨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당부한 말 다 잊어도 좋아, 그냥 딱 하나만 기억해. 인사만 잘해. 모두에게 인사해. 인사가 만사야.”


과장님의 인사해… 인사해… 라는 눈물 젖은 울부짖음은 오래도록 뇌리에 떠나지 않았고, 인사가 제일 중요하다는 내 오랜 믿음이 역시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그래서 나는 정말 열심히 인사를 했다. 너무 발랄하고 친근하게 인사를 했던 탓인지 아주 가끔 “누구시죠?”, “저 아세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비꼬는 투의 질문이 아니라 그들은 무척이나 친했던 누군가를 본인들이 깡그리 잊어버린 건지 미안해하며 물어보곤 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모터를 달고 달리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월급을 다 토해내고도, 내 돈으로 메꾸어야 할 만큼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신입사원이었지만 나는 선배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사를 잘한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나였기에 중국에 와서도 덜 떨어진 중국어로 무조건 인사를 했다. ‘닌하오(您好)’라는 따뜻한 안부에는 돈도, 멋들어진 성조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인사 뒤에 대화를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온화한 미소로 대신했다. 전 사실 어제 베이징에 도착한 한국인이랍니다. 하하 


심이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낼 때, 학교에 갈 때, 보안 요원들과 매일 반갑게 인사하니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먼저 인사를 하니 호기심이 생긴 중국인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중국어가 조금씩 들리자 날씨나 최근 단지의 변화에 대한 간단한 대화들도 나누기 시작했다. 손주를 보는 할머니와의 근황 토크가 이어지고, 18층에 사는 내 또래 여성분은 대뜸 “지금 입고 있는 패딩, 어디 브랜드예요?”라고 묻기도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부리나케 달려서 집에 왔다. 볼 때마다 나의 외할아버지가 생각나는 푸근한 인상의 1층 어르신에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데 어르신이 갑자기 나를 붙잡으신다. “샤오덩이시아(稍等一下_잠시만 기다려요)” 로비에 서 있는데 어르신이 집에서 까만 비닐에 쌓인 엄청난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시는 게 아닌가. 무이산에서 유채 나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너무 많아서 나눠 먹고 싶단다. 딱 봐도 5킬로는 족히 넘어 보였다. 얼떨떨하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거대한 비닐봉지를 집까지 질질 끌고 왔다. 소파에 기대어 가만히 비닐 안쪽을 들여다본다. ‘역시 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네’라고 생각하며 흐흐 웃었다. 그 주말, 춘과 나는 무려 2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유채 나물을 손질하고 데치기를 반복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나물 폭탄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 이런 문장들을 적었다. 


이런 환대는 정말 고맙지만 드물지는 않았다. 환대의 관점에서 지난 여행들을 돌아보면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와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주었다.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이 글귀들을 마음에 새기고 지냈던 날들이었다. 이방인의 여행 같은 일상을 빛나게 해 준 건 때로 또렷하고, 때로 희미했던 갖가지 환대였다. 누군가 내게 베푸는 줄도 모르고 베풀어주었고, 내게 오는 줄도 모르고 순간 순간 닿았던 다정한 환대들. '곳곳'에서 '불쑥', '누군가'에게서 나와서 돌고 도는 환대의 순환을 꿈꾼다. 가끔 나도 이 세상 어디에서건 다정함을 건네고 싶다. 그 다정함이 누군가의 마음에 천천히 가 닿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어려운 삶이 조금 단순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 번도 넘게 반복한 데치기
맥주 안주가 되어 준 유채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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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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