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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ug 10. 2017

고생했어

우리 부부는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인데 그건 내가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때론 수다스럽고, 때로 과묵한 남편의 언어는 한결같은 구석이 있다. 불같이 뜨겁다기 보다는 따뜻하고 진중한 편이다. 그래서 재미는 덜할지라도, 한 번도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거나, 언어로 나를 할퀸 적이 없다. 

 

그 올곧음이 한때 불같았던, 그래서 특히 연인 사이에서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를 상처 주기 위한 목적으로 내뱉기도 했던 나의 언어를 순화시켰다. 

 

그런 연유때문인지, 우리가 매일 하는 말은 

고생했어. 

아니야 니가 더 고생했어. 

수고했어.

아니야 니가 더 수고했어. 다.

 

대화도 습관이 되는 모양이다. 거의 매일 이 말을 주고받았더니(무미건조하게, 때론 영혼 없이라도) 별다른 수고가 없었던 것 같은 날에도, 아주 사소한 일에도 늘 이 말이 나온다. 

 

언어는 때로 현실을 미화시키기도 한다. 별로 수고한 것도 없는데 굉장히 수고한 것처럼 으쓱거릴 때도 있으니. 

  

때로 방패가 되어주기도 한다. 수고했다고 먼저 말을 건네는 상대에게 화살을 쏠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라 그런지 은재는 ‘수고’, ‘고생’이라는 단어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요즘은 좀 이상한 쪽인데, 

자기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에게 ‘고생했어’라고 말하는 걸 굉장히 섭섭해한다. 내가 제일 고생했는데 왜 아빠에게만, 혹은 다른 사람에게만 고생했다고 말하느냐,라고 울먹이는 식이다. 허구한 날 놀고 또 노는 5살짜리와 ‘고생’이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제일 멀어 보이는데, 은재에게는 아닌가 보다. 

 

아빠가 운전해서 고생한 거야, 아빠가 일을 해서 고생한 거야,라고 몇 번 타일러봤지만 은재는 유독 이 단어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완강했다. 

 

귓속말로 속삭이길,

유치원에서 중국어 수업 매일매일 듣는 게 고생이고,

부산에서 모기 40방 물렸으니 본인이 제일 고생했단다. 

은재에게는 매우 합당한 이유일지 모르겠으나 몇 번이고 반복되자 

‘그래 정말 고생했구나’,라고 말하며 볼을 꼬집을 뻔 했다. 

 

어쨌거나, 꽤 즐겁지만 때로 모질고, 때로 어이없는 이 세상을 하루하루 잘 감내하며 살아가는 걸 서로 서로 토닥여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일까. 비록 말뿐이더라도. 

 

가족이니까. 내 편이니까. 나를 지적해 줄 사람은 가족말고도 세상에 널렸으니까. 

  

그나저나 요즘 내 고민은 말의 발바닥도 따라가지 못하는 내 행동. 

 

소파와 말 그대로 한 몸이 되어서 오빠와 결혼하길 잘했어, 집안일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라고 매번 이야기 한다던가

엉망인 집안을 배경으로 고생 많았지, 얼른 쉬어,라고 반복하는 부인은 

말을 야박하게 하면서 집안일에 완벽한 부인보다 더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참이라.

 

곧 내 언어의 신뢰성에 구멍이 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어쩌면 벌써 났는지도 모르겠다. 

위기 의식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참 안 변하네. 

 

어쨌거나 우리의 식상한 ‘고생했어 문답’에 변화가 올 날이 있을지, 가끔 궁금하다. 

고생했어,라는 말의 끝에

그래 나 진짜 고생했다. 힘들어 죽겠어. 넌 대체 하는 게 뭐냐?

 

라는 답변으로 누군가 룰을 깨뜨리면, 


적혀 있는 대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애드리브를 내뱉은 신인 배우처럼 신선하려나. 


그런 때가 온다면 왠지 화가 치미는 게 아니라 

NG! 우리 대본은 이거라고, 다시 말해보게, 친구!”라고 말할 것만 같다.  

 

그.리.하.여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생 많았어,라는 말풍선은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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