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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ug 10. 2017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

올해의 여름휴가 여행지를 물색하고 있다. 

어디가 좋을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란, 여행지에서 하는 육아’라고 누군가는 그랬었지. 

 

맞다. 그냥 ‘여행’과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실로 거대한 차이라 (사전에 따로 등재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완전히 다른 말이다. 여행의 모든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이동거리가 짧아야 하고, 깨끗해야 하고, 많이 걷지 않아야 하고,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 놀이공원 같은 아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은 곳이어야 한다. 아이가 즐거우면 우리도 즐겁고,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그 어느 곳에서도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35살을 넘은, 아이가 없는 커플이 여행 도중 동물원에 가서 토끼에게 당근을 주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순간이 3박 4일의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남는다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처음 아이와 비행기를 타고 야심 차게 떠난 제주도에서, 3살 심이는 하루 종일 ‘그네’만 찾았다. 그때 한창 그네 타는 것에 재미를 붙였던 때라 꽤 비싼 입장료의 아쿠아리움도, 신라호텔의 멋진 수영장도, 신나는 놀이기구도, 아름다운 자연도 심이에 큰 재미를 주지 못했다. 

 

그녀가 원했던 건 오직 그네!!!

 

달래다 지친 우리는 오죽했으면 그네를 찾기 위해 호텔 리셉션에 근처 초등학교 위치를 물어봤다. 에코랜드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작은 그네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곳에서 (집 바로 앞 놀이터에 있는 그네만도 못한) 그네를 타는 몇 분이 3박 4일 중 심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맛집 순례는 또 어떤가. 여행의 맛집 담당인 내 검색 키워드는 ‘제주도 진짜 맛집’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은 제주도 맛집’이 되어 있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찾지 못하고 나는 이내 조금은 체념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제주도 식당’을 검색해본다. 

 

우리는 우선 사랑해 마지않는 회를 제대로 먹지 못한다. 가고 싶었던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명진 전복’에 가지 못하고, 물회도 힘겹게 한차례만 먹을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고등어구이 등의 메뉴를 엄선해서 돌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당시 좋아하던 치킨만 찾는다. 제주도에서 (계속) 먹는 치킨이라. 예전에 상상할 수 있었던가? 


결국 우리는 신라호텔 수영장에서 태어나서 가장 비싼 치킨(몇 조각에 4만 원 가까이)과 오렌지주스(2만 원 가까이)를 시킨다.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가’란 문제에 대해 우리는 굉장히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별다른 선택권은 없다. 그나마 치킨이라도 잘 먹어주면 좋으련만, 대게 2조각만 먹고 더이상 먹기 싫다고 하는 것이 아이다. 그것이 4만 원짜리 치킨일지라도. 

 

당시 밤에 열리는 야외 와인파티 무료 티켓이 있었기에, 나는 와인 한 잔 마시기 위해 아이를 안고 낮은 언덕을 계속 걸으며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는데, 잠들지 않는 아이를 안고 언덕을 계속 돌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다. 왜 비싼 돈 내고 이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왜 달빛은 저렇게 구슬프게 밝은 건지, 정말 나는 와인 한 잔도 못 마시고 들어가야 하는 건지, 왜 아이의 눈은 갈수록 또렷해지는 건지… 매우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찰나, 아이는 기적적으로 잠이 들었다. 나는 잽싸게 아이를 유모차에 눕히고, 와인 6잔을 거의 쉬지 않고 들이켰다. 

 

다음 여행지였던 오키나와 여행은 한 살 더 먹은 언니답게 조금 더 수월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지에서 순간순간 비련의 주인공들이 된다. 아빠는 장시간의 목마와 유모차 운반으로 목과 어깨가 끊어질 지경이고, 엄마도 평소보다 더 많이 안아주느라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양치질을 하고 있다. 순간순간 본전 생각으로 우울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사진으로 남는 찬란한 순간은 짧고, 고생은 길~~~다. 정말 예쁘다, 정말 행복하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서로를 바라보는 뒷 맛이 조금은 쓰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여행을 떠난다. 

 

설마 올해는 조금 더 낫겠지, 하고 기대하기 때문이고,

오랜 시간 공항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삶은 조금 우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진 찬란한 찰나가 우리에게 일상을 버틸 힘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파란만장한 여행이 끝나면, 부모는 그 힘듦이 정확히 그때의 내 아이가 내게 줄 수 있는 여행의 경험임을 잘 알게 된다. 그네와 치킨을 목놓아 찾던 세 살의 아이는 이제 어디에도 없으니까. 


나는 그 사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매우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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