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언어가 다 그렇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리스닝’이다. 중국어로 '팅리(听力)'.
조금씩 말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들리지 않으면 물건을 살 수도, 대화를 이어갈 수도 없다.
요즘 나의 가장 큰 문제도 ‘듣기’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제 조금씩 단어와 말하기는 해나가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쓰는 중국어는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국 발음에는 없는 ‘얼(儿)’화도 심하고,특히 빠르게 말하는 버릇이 있는 상인들의 숫자는 정말이지 못 알아듣겠다.
그런 나에게 지난주 '코이(口语)' 양 선생님께서 내 주신 ‘시장에서 물건 사기’ 숙제는 난이도가 꽤 높았다. 그 정신없는 시장에서 숫자를 알아듣고, 이것저것 묻고, 물건값을 깎고, 게다가 녹음까지 해서 위챗으로 제출해야 한다니! 非常难!
사실 마트에서는 아무것도 얘기할 필요가 없다. 이것저것 물건을 주워 담은 후
-웨이신(이제 웨이신 가능한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웨이신이라고만 하거나 그냥 아무 말없이 내밀어도 된다).
-이꺼따이즈(袋子/봉지 한 개).
딱 2문장이면 충분.
어쨌든 날씨 좋은 주말, 숙제를 위해 아침 시장으로 출발했다.
목표는 심이가 먹고 싶은 과일 2개를 구입하며 ‘단지 달지 않은지?(甜不甜)’, ‘신선한지 신선한지 않은지(新鲜吗)’라는 답정너같은 질문을 물어본 후 한 번에 계산하며 물건값을 깎는 거였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어느 집이 좋을까 염탐을 한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예전에 오빠가 산 적이 있었던 첫 집에서 구매를 시도했다.
우선 딸기 얼마예요?라고 묻는데 성공! 이제 달아요 안달아요? 할 차례인데...
아저씨는 웬 말이 그렇게 많은지… 내가 말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고, 내가 말하기도 전에 딸기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녹음해야 하니까, 나는 꿋꿋이 손에 딸기를 들고 "달아요? 안달아요"라고 물어봤다.
먹어보라고 줬는데 왜 먹지는 않고, 다냐고 물어보고 있냐?는 아저씨의 어이없는 눈빛을 뒤로하고 두 번째 미션을 위해 당당하게 사과 얼마냐고 물어봤다.
숫자가 잘 안 들려 대강 고개를 끄덕하고, 깎아 달라고 했더니 역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뭐라뭐라션머션머.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눈빛만 봐도 깎아 줄 수 없다는 얘기라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총합계도 잘 모르겠기에 그냥 100 내밀고 곱게 잔돈을 받았다.
옆에서 어묵을 사며 또다시 간절한 눈빛으로 깎아달라고 '피앤이이디알(便宜点)' 해봤지만 실패했다. 1,1이 반복되는 걸로 봐서 1위앤도 안 남는다는 얘기인 걸로 미루어 짐작. 어쨌든 깎는 것은 욕심이고 바가지 쓰기 딱 좋은 현재의 나.
그때 시장에서 큰 싸움이 났다. 과일 파는 옆집 아주머니와 젊은 부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며 거들만큼 시끄러운 싸움이었다. 딸기를 사면서 저렇게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 춘과 나는 또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제일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저녁에는 점심때 만들어 둔 감자 샐러드와 함께 먹으려고 모닝빵을 사러 빵집에 갔다. 모닝빵처럼 생긴 것을 발견하고, 안에 뭐가 들지는 않았는지 엄청 더듬거리며 물어봤는데 대답을 듣고 괜한 짓을 했다 싶었다.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집어오면 되지, 듣고도 알지를 못하는 걸 뭘 진땀을 빼서 물어보고 그래!!! 집에 와서 풀어본 역시나 그것은 모닝빵이 아닌 단팥이 정갈하게 들어 있는 모닝빵과 닮은 빵이었다.
팅부동(听不懂, 못 알아들어요)
10여 년 전, 오빠와 중국 배낭여행을 왔을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아는 중국어를 써먹자며 호기롭게 상해에 와서는, 웬걸, ‘팅부동’을 제일 많이 썼다. 어디 어디 가주세요~를 나름 정확하게 구사하는 우리가 중국어에 능하다고 착각한 택시 기사 아저씨는 빠른 중국어로 계속 말을 시켰는데 우리는 당연히 팅부동.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말을 거는 아저씨에게 ‘팅부동’을 연발하다 “Can you speak English?”라고 했더니 이제는 아저씨가 “팅부동” 연발. 그렇게 그때 우리 택시에는 팅부동만이 아름답고 어색하게 울려 퍼졌었다.
알아듣지 못해도 가끔 다른 사람이 웃을 때 적당히 웃어줘야 소외감이 덜어지는 친근한 그런 세계.
이제는 조금 더 들리겠지 기대하고 한 번 더 들어도 여전히 잘 안 들리는 놀라운 그런 세계.
분명히 다 같이 들었는데 숙제를 조금씩 다 다르게 해오는 창의적인 그런 세계.
영어가 갑자기 친근해지고, 잘 들려서 영어 귀가 뚫린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주는 팅부동의 세계.
팅부동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너무 조바심 내지는 말자. 4년 안에 숫자는 들리겠지 뭐!!!